[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30)
정부 UAM 상용화 플랜, 2025→2028년 연기
전 세계 UAM 시장 개화기 늦춰져
현대차 AAM, 수장 바꾸고 상용화 준비 돌입
경쟁사 대비 美 기체 인증 작업 지연
"안전 최우선" 현대차, 한발 느려도 정확하게
2023년 전남 고흥에서 진행된 'K-UAM(한국형 도심항공교통) 그랜드 챌린지' 실증 행사에서 당시 백원국 국토교통부 차관이 했던 말이다. 초기에 정부가 그린 그림은 우리 기술로 전기수직이착륙기(eVOLT)를 개발하고 기체와 교통관리 시스템에 대한 통합 운용 실증을 거쳐 2025년에는 국내 상공 위를 날아다니는 에어택시(버스)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었다. 2024년 말까지 비행 시험장이나 개활지 등 넓은 도심 외곽에서 1단계 실증을 하고, 올해 상반기까지는 도심에서 2단계 실증을 거쳐서 연말엔 상용화를 진행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에어택시 상용화의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근 정부는 도심항공교통(UAM) 상용화 목표 시기를 2028년으로 늦췄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체 개발과 인증이 미뤄지는 데다 경제성과 사업성 부족으로 더 이상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반면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점차 강화되면서 업계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예를 들어 파리 정부는 지난해 파리올림픽 기간 중 UAM 시범 비행을 계획했으나 유럽항공안전청의 상업용 비행 인증을 받지 못해 프로젝트가 결국 무산됐다. 파리 시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도 거셌다. 소음 공해가 심할 뿐만 아니라 UAM 기체를 만들고 이착륙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환경 평가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파리 시민을 설득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집 지붕 위로 안전하지 못한 물체가 떠다닌다'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9월 일본 오사카엑스포에서도 UAM 승객 이송 서비스의 시연이 무산됐다. 이 역시도 기술·인증 문제뿐만 아니라 안전 요건을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승객을 태우지 않고 시범 비행을 하는 수준에 그쳐야 했다.
전 세계적으로 UAM 시범 사업이 늦춰지거나 무산되면서 우리 정부도 계획을 한 템포 늦추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국토부는 'UAM 팀코리아' 본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K-UAM 비전을 담은 상용화 로드맵을 공개했다. 일단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상용화 목표 시기를 2025년에서 2028년으로 3년 정도 늦췄다는 점이다. UAM 사업 운영을 위한 국가 차원의 기본 문서인 'K-UAM 운용개념서'도 업데이트했다.
개정된 운용개념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사업 운영을 위한 규제는 완화하면서도 안전 기준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게 골자다. 우선 기존에는 UAM 사업을 하려면 운송이나 교통관리, 버티포트(이착륙장) 운영 등 3가지 역할을 각각 다른 주체가 맡아야 했다. 이제는 사업자가 상황에 따라 이 역할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게 됐다. 또 버티포트의 설치 기준이나 운영 주체도 유연하게 조정됐다. 소규모 또는 다양한 형태의 버티포트 설치가 가능해지면서 사업자들의 비용 부담도 줄었다. 기존엔 5G 같은 상용 통신망을 반드시 사용하도록 했지만 개정안에서는 필수가 아니라 보조적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기존의 항공 통신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이 역시 사업자의 초기 비용 투자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UAM의 비행경로를 정해진 '회랑(비행 구간)'으로 한정한다는 내용도 개정안에선 사업자가 상황에 맞게 비행 구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사업자의 비용 부담은 줄이고, 민간 참여 촉진을 통해 초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업계와 시장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먼저 받아들여 한 걸음씩 구체화해 나가겠다는 목표다. 새로운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2028년부터 국내 도심 외곽에서 에어택시 또는 에어버스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32년에는 UAM이 도심까지 진입하고 2037년 이후부터는 원격 조종이 가능한 에어택시가 날씨에 관계없이 운항할 수 있게 된다. 2040년 이후에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UAM이 도심 내를 자유롭게 비행하며, 일상 속 주요 교통수단으로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 AAM 기술은 어디까지 왔나
UAM 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전략이 변곡점을 맞으면서 최근 현대차그룹도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사업에 대한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2021년 현대차그룹은 UAM과 지역 간 항공(RAM)을 포함한 개념인 AAM으로 사업 체계를 확장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사에서 감지된다. 2019년부터 AAM 사업을 이끌어온 신재원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위촉됐다.
신 고문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30년 넘는 경력을 쌓은 우주 항공 전문가다. 2019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해 AAM 사업을 이끌어왔다. 2021년부터는 현대차그룹 AAM 담당 사장과 미국 AAM 독립법인 슈퍼널의 최고경영자(CEO)를 겸임해왔다. eVOLT 기체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제도 구축, 글로벌 협력 강화, 실증 사업을 주도하며 사업의 초석을 닦았다.
현대차그룹 AAM 부문은 지난 6년간 신 고문의 리더십 아래 꾸준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시장 개화기에 맞춰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다. 그동안 최대 과제가 기체의 개발, 즉 기본 성능 확보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상용화를 준비해야 할 때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리더십 교체가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신임 사장을 물색하며 AAM 상용화를 위한 2단계 국면으로 사업 운영을 전환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AAM 사업부와 슈퍼널이 공동 개발한 eVOLT 'S-A2'는 현재 미국연방항공청(FAA)의 인증을 앞두고 있다. S-A2는 조종사를 포함해 총 5명이 탈 수 있는 기체로 개발됐다. 8개의 로터가 아래위로 90도 이상 꺾이는 '틸트 로터' 구조를 적용해 운항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최대 400~500m 고도에서 시속 200㎞로 약 60㎞의 거리를 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음 수준도 식기세척기 정도의 45~65㏈로 유지해야 한다. 슈퍼널의 단기적인 목표는 2028년 미국에서 개최되는 LA 올림픽과 맞물려 미국 내에서 대규모 UAM 상용화 서비스를 선보이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 인천국제공항공사, KT, 현대건설과 함께 꾸린 컨소시엄을 통해 국내 상용화를 위한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현대차를 포함한 5개 사는 'K-UAM 그랜드 챌린지' 1단계 실증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밝혔다. 기체와 운항 상황, 교통관리, 버티포트 등에 대한 공동 검증을 수행했으며 eVOLT 기체뿐만 아니라 운용시스템, 5G 통신망 간의 통합 시스템 검증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다만 국내 실증에 슈퍼널이 개발한 'S-A2' 기체가 투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단계 실증에 투입됐던 기체도 'S-A2'는 아니었다. 올해 11월부터 추진할 2단계 실증에도 당장 투입은 어려워 보인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 슈퍼널이 개발한 기체를 실증에 투입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기체로 대체해 운영 체계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전 최우선" 현대차, 한발 느려도 정확하게
미국 당국의 기체 인증과 국내 실증 사업에 기체 투입이 늦어지면서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의 AAM 사업이 경쟁사에 비해 한발 늦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024년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현장과 2025년 현대차 주주총회에서도 AAM 인증 및 사업 일정 지연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거론됐다.
이에 대해 신 고문은 차별화된 현대차그룹의 전략을 강조했다. 경쟁사와 달리 처음부터 민간 항공기 수준의 높은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기체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AAM이 일반 대중들을 위한 교통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민간 항공기 수준의 안전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이 시장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미국과 유럽 인증을 동시에 받을 정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슈퍼널은 기체 개발 프로젝트 초기 계획과 연구개발(R&D)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고 보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왔다. 설계 안정성 확보와 기술 검증에 경쟁사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면서 인증 준비 시기가 경쟁사보다 한발 늦은 건 사실이다.
미국은 선진 기술력과 대규모 투자, 체계적인 규제·인증 시스템, 광대한 수요 시장, 인프라 구축 등을 바탕으로 가장 빠른 UAM 시장 활성화가 기대되는 국가다. 현재 FAA의 기체 인증 절차에서 가장 앞선 업체는 조비(joby)와 아처(archer)다. FAA의 기체 형식 인증 절차는 총 5단계다. 최종 인증을 통과하면 상업 운항과 기체 양산이 가능해진다.
현재 조비는 4단계 심사와 인증을 마치고 5단계 최종 비행과 검증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아처는 3단계 인증을 진행 중이다. 기체 인증에선 조비가 가장 앞섰지만 상용화 목표 시기는 오히려 아처가 빠르다. 아처는 인증을 완료하는 대로 2025년 말 상용화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며 조비는 2026년이 목표다. 아처는 조종사 훈련 아카데미 인증, 운항 사업자 인증 등 실제 상업화 서비스에 필요한 인증들을 먼저 받으면서 운영 인프라를 확보했다. 항공기 제조에서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을 잡았다. 이미 항공시장에서 검증된 부품을 외부에서 적극 공수하면서 기체 생산의 완성도를 빠르게 높인다는 전략이다. 서비스 관련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놓고 기체 인증이 완료되는 즉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목표다.
조비는 기체 개발과 인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업체는 부품 업체의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며 자체 개발·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자체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 향후 부품사에 대한 통제력이 강해지면서 제조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회사의 이익률 또한 높아진다. 도요타그룹은 조비의 대표적인 투자사다. 도요타는 2020년부터 조비에 누적 1조원 이상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다. 수직 계열화를 통해 부품과 기체 개발의 안정성을 높이는 전략은 도요타의 완성차 생산 전략과도 방향이 일치한다.
반면 현대차그룹 슈퍼널은 인증 신청 및 기초 협의 수준인 1단계 인증을 마치고, 구체적인 인증 계획을 수립하는 2단계에 진입했다. 지난 3월에는 본격 인증을 앞두고 첫 시험 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인증 획득 시기는 다소 늦을 수 있지만, 안전과 검증 기준 자체를 높여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유럽 인증 기준까지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 기준을 만족하는 기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또 UAM 서비스의 최종 목표는 단순 기체 생산뿐 아니라 버티포트 구축과 운영 서비스, 교통 연계까지 포함된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이다. 완성차 업체의 계열사로서 대량 생산 제조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착륙장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이동을 의미하는 '라스트마일 서비스'까지 원활하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 그룹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이 UAM 시장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는 기체 제조와 여객·화물 운송 등 서비스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UAM 시장의 예상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가 예상한 2040년 글로벌 UAM 규모는 1조5000억달러(약 2086조원)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KPMG는 2050년까지 UAM이 빠르게 번성할 70개 도시를 선정했다. KPMG는 인구밀도와 경제성장, 도로 혼잡도 등을 고려할 때 향후 UAM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장으로 서울과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 아시아의 메가시티를 꼽았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