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외교사에서 가장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것은 고려 성종 때 거란을 상대로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의 이야기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기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거란과의 외교관계를 거부한 고려를 침략하자 고려 조정은 영토를 내어주고 화해하자는 의견까지 등장, 우왕좌왕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때 당시 국제 정세에 밝았던 서희가 나서서 외교적 해결을 제안하고 홀로 소손녕을 만나 한판 대결로 엄청난 성과를 올린 것이다.
물론 서희의 기적과 같은 외교 담판은 현재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이다. 과거는 영토전쟁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경제전쟁의 시대가 되었다. 전 세계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고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에서는 혈혈단신으로 한판 승부를 벌일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교와 협상에는 과거와 현재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이 존재한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서희는 당시 거란의 주된 관심은 송을 몰아내고 중국 본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여진족을 성가시게 생각하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둘째, 상대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가진 자원 중에서 상대에게 줄 수 있고 공동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다. 서희는 압록강 주변을 차지한 여진족 때문에 거란과 교류하기 어렵다는 점을 내세워 압록강 동쪽으로 요새를 쌓게 해주면 여진을 몰아내고 거란과 교류하겠다고 주장하여 강동 6주를 차지한 것이다. 셋째 외교에 임하는 당당한 자세이다. 서희는 첫인사에서부터 뜰에서 절을 하라는 소손녕의 요구를 물리치고 서로 대등하게 인사의 예를 갖추도록 하였다. 일종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은 것이다.
최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8월25일 한미 정상회담은 위의 세 가지 원칙을 다 갖추고 이루어낸 소중한 외교적 성과라고 생각된다. 첫째, 우리 정부는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무역적자 해소뿐 아니라 중국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겪고 있는 해군력 증강과 그를 위한 조선업의 부흥임을 알고 그에 맞는 접근을 하였다.
둘째, 세계 최고의 우리나라 조선업 역량으로 협력사업을 하면서 원자력이나 반도체 관련 협력도 우리가 함께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을 알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낸 것이다. 셋째, 국민의 눈에 비친 'Top Diplomat(최고 외교관)'인 대통령의 자세가 당당하고 여유 있어 보인 점도 그러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에서 트럼프와 마주 앉아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회담을 이어나가면서 트럼프를 'peacemaker'로 지칭하며 여유 있게 대응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외교의 성공원칙에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이 바로 민관의 원팀 플레이 방식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에는 순방에 동행한 세계적 수준의 우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기여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들 기업이 미국에 총 15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한 것이 나름 순조로웠던 정상회담의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이 우리 국민경제에 플러스가 되는 방향으로 되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국내 투자할 것이 미국에 투자되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개혁 등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또한 미국 투자가 더 많은 수출로 이어지고 연관산업에 대한 수주 확산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의 민관 원팀 플레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경선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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