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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탐낸 브랜드…'무인양품' 누가 만들었나 [일본人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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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겸 작가, 츠츠미 세이지
재료·공정 낭비 줄이고 기능에 집착
버블경제 소비문화 우려해 탄생

약속 전 시간이 붕 떴을 때, 계절이 바뀌어 집에 무언가 새로 두고 싶을 때 가끔 무인양품을 둘러보게 되는데요. '이런 것도 있었나' 흠 싶은 아이디어 상품도 가끔 발견하곤 하죠. 포장지도 없고 깔끔한 것이 무인양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인데요.

중국도 탐낸 브랜드…'무인양품' 누가 만들었나 [일본人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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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일본에서는 무인양품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중국에서 무인양품이 상표권 전쟁에 휘말렸는데, 끝내 패소 판결을 받게 됐기 때문이죠. 무인양품이 일본에 진출하기 전, 중국 기업이 먼저 자국에 무인양품과 유사한 '무인양품 Natural Mill'이라는 브랜드를 낸 것인데요. 이 중국 기업이 원조 무인양품이 중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브랜드와 너무 유사하니 상표를 쓰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정작 원조 무인양품이 무인양품이라는 상표권 쓰기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에 일본도 들썩였습니다.


여하튼 외부에서 눈독을 들일 만큼 유명한 무인양품,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요? 오늘은 일본 무인양품의 창업자 고(故) 츠츠미 세이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츠츠미씨는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나 2013년 사망했습니다. 아버지가 세이부 백화점 등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세이부 그룹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로인데요. 본처의 자식이 아니었고, 이와 관련해서 어린 시절부터 불화를 겪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도쿄대에 입학한 뒤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고, 필명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작가 활동도 합니다. 이 때문에 그가 낸 소설에서도 아버지와 자식이 갖는 불화와 이해가 주제로 많이 등장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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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세이부 그룹의 후계자 싸움 구도에서도 츠츠미씨는 계속 밀려나는데요. 그룹의 선대 회장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세이브 그룹 총수 자리는 이복동생이 물려받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학창 시절 정치 활동을 한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본인도 이 때문에 집안을 뒤집어놓을 성격이 못 됐죠. 그래서 이때 '방황의 계절 속에서'라는 첫 소설을 펴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 시기 경영인이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으로 파고들어 갔죠.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는 세이부 그룹의 유통 부문을 상속받게 됐는데요. 이때부터 세이부 백화점에 입사해 해당 부문 경영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당시 한큐 백화점 회장의 자택에 가서 유통 부문 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해요. 동시에 시집도 간행하는 등, 경영인과 예술인의 경계를 넘나들죠.


무인양품은 이제 등장할 때가 됐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이 경제 호황기에 들어갔던 1980년입니다. 츠츠미씨는 유통 부문에 있는 세이유 마트도 관리하게 되는데, 세이유 마트에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내놓게 됩니다. 사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각 유통업체가 PB상품 개발을 시작했다고 해요. 그렇게 1975년 세이유도 다시마, 요리에 쓰는 통조림 상품을 출시했었는데 예상보다 큰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이유는 이 PB상품을 다양하게 전개해보자는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당시 세이유 마트에서 출시했던 PB 상품들. 양품계획 홈페이지.

당시 세이유 마트에서 출시했던 PB 상품들. 양품계획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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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 구매층인 주부들의 의견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해요. "왜 양송이는 통째로 먹는데, 양송이 슬라이스는 갓 끝을 잘라내 깔끔한 형태로 판매하나요?"라고 한 것인데요. 왜 쓸데없이 공정을 늘리고 재료를 낭비하느냐를 묻는 것이었죠. 이런 발언을 토대로 츠츠미씨는 '상품화 과정에서 소재를 낭비하지 않는다', '가공 공정을 늘려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사용자의 필요성 유무를 따진다'라는 철칙을 토대로 실용적인 상품을 저비용으로 조달한다는 콘셉트를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무인양품의 초기 콘셉트, '이유가 있어, 싸다(わけあって、安い)' 죠.


사실 이는 츠츠미씨의 생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이 1980년대 버블 시기의 소비문화를 우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의 신화와 구조'라는 저서에 굉장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실제로 "아무리 생활이 풍족해져도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워지면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된다"라는 이야기는 그의 명언처럼 전해지죠. 1980년대 소비 과열 풍조로 아무 가치가 없는 제품이 브랜드 명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아예 '브랜드 없음'을 추구하는 무인양품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무인양품(無印良品)'의 무인(無印)은 이런 브랜드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데요. 그래서 일본에서도 무인양품은 앞 글자 두개만 따서 '무지루시'로 부르곤 합니다.


무인양품의 연어 통조림 홍보 포스터.'연어는 전신이 연어야(しゃけは全身しゃけなんだ)'라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양품계획 홈페이지.

무인양품의 연어 통조림 홍보 포스터.'연어는 전신이 연어야(しゃけは全身しゃけなんだ)'라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양품계획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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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은 이후 이 '낭비하지 않음'에 대한 홍보를 굉장히 깔끔하게 진행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광고가 '연어는 전신이 연어야(しゃけは全身しゃけなんだ)'라는 카피인데요. 당시 다른 곳에서 파는 연어 통조림은 연어 뱃살 부분만 동그랗게 잘라 팔았다고 해요. 그러나 이 연어 통조림 PB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이유 관계자가 "연어는 꼬리부터 머리까지 다 먹고 모든 부위가 맛있는데, 통조림으로는 이렇게 먹기가 어렵다"라는 평가를 남기죠. 이를 토대로 머리, 꼬리 등 전신을 사용한 연어 통조림을 발매하게 됩니다. 심지어 뱃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다 쓰니 더 맛있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죠.


또 1981년에 선보인 아기 옷 상품은 가장 때 묻지 않은 깔끔한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을 살려, '사랑은 꾸미지 않는다(愛は飾らない)'라는 카피로 홍보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을 관통하는 문구들이죠. 실제로 이후 일본이 버블경제 이후 장기침체로 들어가면서, 이 기능적이고 저렴한 상품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장기침체 상황에서도 꾸준히 매출을 내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죠.


이렇게 무인양품의 스토리를 보니 결국 본질을 관통하는 것이 오래 사랑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정작 이후 츠츠미씨는 부동산, 레저 등 여러 계열사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빚을 지게 됐습니다. 2000년 70대에 나이로 기업 경영에서 물러나게 되죠.


2013년 츠츠미씨가 사망한 이후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는 스스로 세상과 어딘가 본인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창작자로 있고 싶었지만, 성공한 경제인으로의 역할도 수행했어야 하니까요. 이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재계 사람을 만나고 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정장 바지를 입고 있는데, 나만 짧은 바지를 입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도 해요. 경영자로 이런 안티테제를 갖는 것 자체가 시장에는 신선한 변화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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