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사과할때 필수품 된 과자
내용물을 찢고 나오는 과감한 모양새
"웃으면서 사과 의사를 표할 수 있는 선물"
일본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러 갈 때 선물로 지참하는 과자가 있다. 도쿄의 전통 과자점 신쇼도(新正堂)에서 만드는 할복 모나카다. 대량의 팥소가 찹쌀 피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과격한 모양새로, 샐러리맨의 송구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는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피를 찢고 나오는 내용물, 할복한 영주에 영감받아
모나카는 바삭바삭한 찹쌀 피 안에 팥소를 채운 일본 전통 화과자다. 하지만 신쇼도에서 만드는 할복 모나카는 다르다. 찹쌀떡과 팥을 뭉쳐 만든 내용물이 튀어나올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할복 모나카를 만드는 신쇼도는 1912년 창업한 전통 과자점으로, 4대를 이어 가고 있는 장인 기업이기도 하다. 할복 모나카는 1990년대에 신쇼도 3대 주인이었던 와타나베 히사 전 사장이 개발했다.
당시 와타나베 사장은 경직된 화과자 업계의 분위기를 깨고자 새로운 제품 개발에 몰두하던 중 '아코 사건'을 떠올렸다. 아코 사건이란 에도 시대였던 1701년 당시 아코 번(지금의 일본 효고현)을 다스렸던 아사노 가문이 일으킨 난이다.
당시 아코 번의 영주였던 아사노 나가노리가 천황의 사신 자격으로 온 키라 요시히사에 모욕당하자, 분을 못 참고 칼을 빼 들었다. 천황의 사신 앞에 칼을 겨눈 죄는 아무리 영주라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결국 아사노는 이 죄로 할복 명령을 받아 죽음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사노를 따르던 47인의 무사들은 끝내 키라를 살해, 주군의 복수에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에서 무사도와 충심을 기리는 우화로 남아 있다.
할복 모나카는 아코 사건에 영감을 받아 개발된 과자였으나, 구상 단계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신쇼도 직원은 물론 가족들도 파격적인 과자 모양에 거부감을 표했고, 출시 전 진행한 소비자 설문조사에서도 119명 중 118명이 반대표를 던졌을 만큼 비호감을 샀다. 할복 모나카가 세상에 나온 건 순전히 와타나베 전 사장의 고집 때문이었다.
일본의 독특한 '사죄용 과자' 문화
불안한 출발선을 끊은 할복 모나카는 처음엔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으나, 엉뚱한 계기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고객에게 주식을 잘못 추천해 큰 손실을 낸 증권사 직원이 사과의 의미로 할복 모나카 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 상황을 취재하던 한 신문기자가 "사죄하기 위해 할복 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며, 할복 모나카는 순식간에 '사과용 선물'의 대표 격으로 부상했다.
이와 관련해 와타나베 전 사장은 지난해 도쿄 지역지 '도쿄 워커'와의 인터뷰에서 "할복 모나카가 성공한 이유는 '웃으면서 사과 의사를 표할 수 있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라며 "업계에서 화과자는 하루에 80개만 팔려도 성공인데, 이제 할복 모나카는 매일 2000개씩 나가는 제품이 됐다"고 전했다.
할복 모나카의 인기 비결 뒤에는 일본 특유의 선물 문화도 있다. 일본에선 가족이나 친척, 친구, 거래처 등 중요한 사람들과 만날 때 소소한 선물을 지참하는 '오미야게(お土産)' 문화가 있다. 오미야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선물이지만, 비즈니스 관계에선 사죄 의사를 표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용도로 전달되기도 한다.
기업이 구매하는 오미야게는 주로 고급 화과자로 구성된다. 일본의 기념품 가게, 선물 가게 등에는 '거래처 사죄용 화과자'만 취급하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일본에서 사죄용 오미야게로 즐겨 쓰이는 할복 모나카, 고급 양갱 등 가격은 대부분 4000~6000엔(약 3만7000~5만6000원) 선이다.
일본 최대 백화점 체인 미츠코시 이세탄은 사죄용 선물 활용법 게시글에서 "먼저 사과 의사를 전달한 뒤 상대가 확실히 받아들인 타이밍에 전달해야 하며 '제 마음의 선물이니 받아주십시오' 같은 표현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또 선물 포장은 색실을 나비 모양으로 묶은 '홍백 매듭'을 사용해야 하며, 선물 과자 가격은 3000~1만(약 2만8000~9만4000원)엔 사이로 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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