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시각]생명을 구하는 생명은 누가 지키나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초동시각]생명을 구하는 생명은 누가 지키나
AD
원본보기 아이콘

뉴욕시 경찰관이던 제임스 자드로가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세계무역센터에서 구조와 복구 작업에 참여한 뒤 오랜 기간 호흡기 이상 증세를 겪다 숨졌다. 미국 정부는 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고 현장 구조자들의 2차 후유증을 관리하기 위해 2011년 그의 이름을 딴 '자드로가 법(Zadroga Act)'을 만들어 보상과 의료지원을 확대했다.


이 법은 5년 뒤 개정 작업까지 거친다. 테러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공무원과 민간인 6만3000여명 모두를 보상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희생자 구조와 현장 복구, 잔여물 청소 등 테러와 관련된 작업을 한 사람들이 모두 대상이다. 테러 이후 14년 동안 소방관 950여명을 포함해 약 3900명이 암 판정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태원 참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인원만 3300명인데, 집중 심리상담과 지원은 1년 만에 끝났다.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후 우울증을 앓던 소방관이 극단 선택을 하고 나서야 나온 정부의 후속 지원책은 우리가 소방관을 어떻게 예우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심은 폭죽처럼 터졌다 사라지기 일쑤다. 대통령마다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하지만 그때뿐이다. 목숨 걸고 현장에 다녀온 뒤 이들이 챙겨 먹는 한 끼 급식 단가가 교도소보다 못한 3000원대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드러난 것도 불과 1년 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신 건강' 관리 수준은 더 참담하다. 치료가 시급한데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동료의 시선이 더 두렵다고 한다. 지난해 소방관 6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자살 위험군에 속한 소방관만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 삶을 스스로 마감한 소방공무원이 연평균 13명으로 순직보다 자살을 더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현장에서 받는 대접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소방관은 '공무원'일 뿐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15개 직업을 대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는데 소방관은 11위에 그쳤다. 비슷한 조사에서 미국과 독일은 소방관을 수년째 1위로 꼽았다.


예산과 행정 등 국가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미국과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에게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는데 책임만 강요할 수는 없다.


인력 충원과 수당개선 등 이들이 수년간 요구했던 기본적인 것들부터 살피는 게 시작일 수 있다. 국가직으로 전환됐다고 하나 법과 제도가 그대로인 '반쪽짜리 국가직화'는 끝내야 한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지원 체계도 필요하다. 이들의 고통은 복합적 층위에서 비롯한 트라우마가 원인인데 이를 추적·관리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소방관은 잠긴 문을 열어주거나 문틈에 낀 고양이를 구출하거나 연탄을 갈아주는 동네 반장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주는데 목숨을 걸고 내 생명과 내 재산을 지켜달라고 할 것인가.


50여일 뒤면 새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한다. "살기 위해 갔던 일터가 죽음의 장이 돼선 절대 안 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는 재난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뿐만 아니라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들에게도 해당한다.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않았다면 사회적 타살이 맞다. 지금부터라도 이들을 위한 면밀한 처우 개선과 상시 지원제도화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길 기대해본다.





배경환 사회부 차장 khba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