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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새 상법과 정반대로 가는 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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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대기업 계열사 프리IPO 참여 논란
상법 개정한 정책 기조와 정반대 행보
주주보호 우선하는 신뢰 보여줘야

산업은행이 최근 HD현대의 로봇 자회사 HD현대로보틱스에 상장 전 투자유치(Pre-IPO) 형태로 참여하기로 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KY프라이빗에쿼티와 함께 약 2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단순한 투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정부가 추진한 자본시장 개혁 방향과는 정반대인 행보다.


프리 IPO는 기업이 상장(IPO·기업공개)을 앞두고 마지막 단계에서 받는 투자다. 이 제도 자체가 문제라 할 수는 없다. 토스, 마켓컬리, 야놀자 등 국내 대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들도 이렇게 자금을 조달해 성장했다.

문제는 상장된 대기업 계열사에서 프리 IPO가 진행될 때다.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비상경보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에도 대기업 자회사가 프리 IPO를 진행한 뒤 상장에 나서면 기관투자가의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졌고, 대주주는 지배력 강화를 위한 자금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쪼개기 상장' 논란이 뒤따르면서 모회사 주주의 이익은 희석되고, 시장 전반에는 불신이 커지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일조했다.


이재명 정부는 소액주주 보호를 최우선에 두고 자본시장 개혁에 나섰다. 여당 역시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상법을 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상장 대기업 자회사의 프리 IPO에 참여하는 것은 황당하다. 자본과 이익을 충실히 좇는 사모펀드라면 그럴 수 있지만, 산업은행은 정부 정책 기조와 시장 신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더구나 HD현대로보틱스는 굳이 외부 자금을 끌어올 만큼 모기업에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HD현대그룹은 조선업 호황을 바탕으로 최근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다. HD현대오일뱅크는 꾸준히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고, HD현대일렉트릭의 변압기 사업도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직수혜가 예상된다. HD현대로보틱스의 90% 주주인 그룹 지주사 HD현대의 올해 1분기 별도 영업이익도 2605억원이다.

산업은행이 정말 로봇 산업에 미래를 걸고 싶었다면,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라 대학이나 유망 스타트업, 벤처기업을 먼저 살폈어야 했다. 대기업 계열사라도 최소한 '쪼개기 상장'을 예고한 기업과는 선을 그어야 했다. 지금 상황은 과거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산업은행이 개입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산업 안정과 국민경제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벌 특혜 논란으로 귀결됐다.


정부가 주주 보호를 외친다면, 공적 자금 투자는 최소한 상장 대기업 프리 IPO에는 제한을 두고, 소액주주 보호 장치를 병행하는 조건을 붙여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문제는 결국 '신뢰'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신뢰를 무너뜨린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시장에서 진정성을 얻기 어렵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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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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