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하다. 신청 안 했다고 안 주니까 지원을 못 받아서 죽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빈곤층, 취약계층 등 복지 대상자가 자동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하자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개선안 마련에 분주하다. 반복되는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을 해결하겠다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이자 국가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라는 평가와 함께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복지서비스는 대상자 본인이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복지수당과 서비스가 367종에 이르고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복지 혜택까지 포함하면 5300종이 넘는데, 대부분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지원받는 국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지해 혜택받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부정 수급을 막아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으려면 거주지 주민센터를 찾거나 온라인을 통해 가족관계증명서, 주택임대차계약서, 재산 증빙서류 등을 제출하고 소득과 재산 등이 기준에 해당하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소득과 계좌 등을 확인하고 가족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가족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 등도 요구한다.
문제는 생계를 위협받는 극빈층도 본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서비스 대상자에서 누락된다는 점이다. 독거노인, 고립·은둔청년 등 정보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은 정작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어떤 게 있는지,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 데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서류를 발급받는 과정조차 어려워한다. 장기간 생활고를 겪으며 주변과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일수록 가난을 증명하고 수급 대상자로 낙인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신청하려는 의욕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모르면 못 받는 복지'는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반면 신청주의의 반대 개념인 자동지급제가 실현되려면 모든 국민의 소득·재산 정보가 투명하게 파악돼야 한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도 쉽지 않지만, 편법을 통해 재산이나 소득을 숨기고 복지를 남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도 필요하다. 서류상으론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실제 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는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 예산뿐 아니라 복지인력을 지금보다 더 많이 늘려야 하고, 지금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업무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건강보험료 체납이나 단전·단수 등과 같은 위기 신호를 감지해 위기가구를 발굴하듯 앞으로는 더 많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복지 대상을 선별하고 지원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당장 부모급여나 아동수당 같은 보편적 수당부터 자동지급으로 전환해 다른 복지로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한다니, 신청하지 않아도 받게 되는 혜택은 국민의 관점과 인식을 바꾸는 효능감을 가져올지 모른다. "복지 대상자를 찾고 지급하는 노력을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대전환"이라는 대통령실 설명처럼,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효율적인 복지 전달체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부처와 전문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조인경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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