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통법학회·한국유통학회 공동 세미나
전문가들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우려 표명
"안전한 대기업 제품 선호, 부익부빈익빈 심화"
소비자 환불 요구도 차질 가능성
지난해 발생한 티몬·위메프(티메프)의 판매자 대금 미정산 사태와 올해 초 홈플러스의 기습적인 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유통 시장의 정산기간을 단축하려는 움직임이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가운데,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법 개정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기업 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고 대금 지급 시기를 인위적으로 줄일 경우 중·소규모 사업자의 부담이 커지고, 납품 물량 감소와 물류비 부담이 커져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대규모 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일 단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 특별세미나를 개최한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흥순 기자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대규모 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일 단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직매입 정산 주기가 현행보다 단축될 경우 유통업자들은 현금 유동성이 위축돼 매입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중소 납품 업체의 물량 감소로 이어져 중소·중견 유통업체로 피해가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내 주요 유통사들은 각종 규제가 적용되는 국내 납품업자보다는 (납품대금 지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가격이 저렴한 중국 등 해외 셀러의 상품을 매입하는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이는 국내 중소업체의 매출액 감소 등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황 한국유통법학회 회장(고려대 교수)도 "정산 기간을 획일적으로 단축하면 유통 매장에서 상품을 납품하는 회사가 자금 회전과 재고부담 문제로 인지도가 낮은 중소기업 제품보다 대기업 제품을 선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산 기간 단축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 교수는 "가령 온라인을 통해 정품인 줄 알고 구매한 제품이 '짝퉁'으로 확인되거나 하자가 있을 경우 현행 규정에서는 대금을 정산하기 전 3개월 안에 반품을 요청할 수 있지만, 정산 기간을 단축하면 판매자가 10~20일 안에 대금을 받고 사라질 수 있다"면서 "이 경우 환불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피력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한 뒤 해당 상품이 표시·광고의 내용이나 계약 내용과 다를 경우 물건을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에 청약 철회 등을 할 수 있는데 대금을 조기에 지급할 경우 피해가 발생해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티메프의 판매자 대금 미정산 사태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플랫폼 입점사와 납품업체의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온·오프라인 유통업자의 대금 정산 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6일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 공동 주최로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대규모 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일 단축의 쟁점과 과제' 특별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김흥순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대표적으로 22대 국회에서 윤영석, 임미애, 강민국, 오세희, 김남근 의원 등이 대규모유통업자와 온라인중개거래 플랫폼 등을 대상으로 판매 마감일로부터 10~20일, 직매입의 경우 상품 수령일로부터 30~40일 이내 대금을 정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티메프 미정산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10월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정한 정산 기간은 직매입의 경우 상품 수령일로부터 60일 이내, 반품 조건부로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한 뒤 판매수수료를 공제한 상품 대금을 지급하는 특약매입은 40일 이내다.
장명균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날 주제 발표에서 "티메프와 홈플러스 사태로 정산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는 이슈가 촉발했지만 이는 대금 지급 기간보다 해당 기업의 자금 관리와 내부 통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획일화된 정산 주기 단축을 적용하기보다 업태별, 매입 유형별 상황을 고려한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며 "온라인, 오프라인 유통 거래 구조가 다른 점을 기반으로 정산 주기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종합토론자로 나선 이호택 계명대 교수도 "문제가 된 대금 미정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간 단축에 앞서 에스크로(escrow·보증금 예치), 환불 보증 보험 등 제도적 보완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개정 법안이 납품사나 업자들의 보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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