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미 투자 확대와 관세 합의가 이뤄졌지만 재계는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주요 산업별로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일부 업종은 기회가 커졌으나 전반적으로는 관세 부담과 투자 압박이 동시에 작용해 경쟁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관세 인하 합의가 긍정적이지만 미국의 산업정책 방향과 연계된 조건부 조치가 많아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자동차 분야는 이번 합의로 관세율이 기존 25%에서 15%로 낮아졌지만 실제 발효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이 지연되면서 유럽연합(EU)과 일본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며, 영국 역시 관세 인하를 결정한 뒤 시행까지 50일이 소요된 바 있다. 업계는 한국이 이미 미국산 차량 안전 규제 상한을 없앤 만큼 미국도 약속한 관세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미국이 자국산 자동차, 특히 픽업트럭 판매 확대를 요구하면서 국내 소비자 수요와 맞지 않는 갈등 요인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가장 바라는 것은 미국산 차, 특히 미국산 픽업트럭이 한국에서 많이 팔려서 무역수지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문제는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산 차를 사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이러한 요구를 향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이재명 대통령에게 준 선물. 백악관 기념 메달과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을 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오찬 메뉴판. 2025.8.26. 연합뉴스
반도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업계가 꼽는 가장 무거운 과제다. EU가 미국과의 협의에서 15% 관세 수준으로 정리한 만큼 한국도 같은 대우를 기대할 수 있으나, 미국이 현지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를 면제하거나 감면하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관세 혜택을 투자와 직접 연계하는 방식으로 기업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이 이미 진행 중인 미국 내 대규모 투자에 더해 중국 시장 의존도까지 관리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미국의 요구가 추가 투자 쪽으로 기울 경우, 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을 집행해야 하고 이는 곧 국내 투자 여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위원은 "반도체나 의약품은 아직 조치가 구체화되지 않았고 관세 포고문이 나와야 확정된다"며 "정부와 기업이 발 빠른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철강은 개선 여지가 더욱 제한적이다. EU와의 합의문에서도 관세율할당물량(TRQ) 논의를 시작한다는 수준에 머물렀고 구체적인 인하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내 철강 업계의 강경한 반대 기류가 여전해 단기간 내 관세 부담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미국 빅3가 해외 생산 물량이 많아 이해관계가 복잡하지만, 철강은 미국 내 생산 기반이 탄탄해 보호주의 요구가 강하다"며 "한국도 현실적으로 큰 폭의 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철강은 미국 산업정책의 상징적 영역이라 단기적 개선 기대가 낮다고 분석한다.
원자력·조선·방위산업 등 전략산업에서도 후속 과제가 뚜렷하다. 원자력은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 간 협력 방안을 구체화해야 하며, 조선은 미국 법인 인수나 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현지 시장 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조선 분야는 미국 측과의 합작 또는 현지 법인을 통한 수주 확대가 필요하다"며 "원자력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웨스팅하우스와 구체적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산 분야는 주한미군 역할 변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첨단 무기 중심으로 구매 항목을 재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는 관세 합의의 반대급부 성격이 짙은 만큼 국내 산업과의 연결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가 단순한 비용 부담이 되지 않도록 국내 산업 생태계와 연계해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15% 상호관세는 새로 생긴 것이고 자유무역협정(FTA)도 사라졌다"며 "국내 투자 재원까지 빠져나가는 상황인 만큼 산업 기반을 다지고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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