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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할머니는 왜 불경 소리에 춤을 추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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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칸 '라 시네프' 1등상 '첫여름'
손녀 결혼식 대신 남친 49재 택한 여성 노인
욕망과 해방 동시에 실천하는 삶 제시

일흔을 넘긴 영순(허진)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손녀의 결혼식과 사랑했던 남자 학수의 49재가 같은 날 치러진다.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체면은 결혼식으로 이끌지만, 그녀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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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왜 절로 향할까. 허가영 감독의 단편영화 '첫여름'은 그 순간을 감성적으로 담아내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의무와 개인적 욕망의 충돌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려낸 결과다.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여성 노인의 신체는 대개 은폐되거나 억압되게 그려졌다. 허 감독은 관념을 뒤집고 욕망과 기쁨을 발산하는 주체로 재정의했다. 늙은 몸으로도 사랑할 수 있고, 욕망할 수 있다는 급진적 메시지로 생명력의 지속 가능성을 증명했다.


영순은 절에 들어가지 않고 계단 아래에서 망설인다. 그러다 불경 소리가 들려오자 무언가에 홀린 표정으로 과거 학수와 함께 카바레에서 췄던 춤을 춘다. 염불에 몸을 맡기는 행위는 애도와 생의 융합이자, 억눌린 감정의 폭발적 해방이다. 불경은 죽은 이를 기리는 의례적 소리이며, 춤은 살아 있는 자의 육체적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춤은 언어와 달리 설명이나 논리가 필요 없는 감각적 발산이다.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체면에 묶여 살아온 영순에게는 "나는 아직 살아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조용한 눈물이나 정적인 애도가 아닌, 역동적인 몸짓으로 감정을 분출해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된다.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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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결합하는 불경은 본래 명상적 몰입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영순이 춤을 추는 순간 억압된 내면을 해방시키는 리듬이 된다. 죽음의 의례인 49재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사회가 노년 여성에게 강요하는 틀을 깨버린다.


영화의 다층적 의미는 영화 전반에 배치된 촘촘한 장치들로 전달력이 배가된다. 허 감독은 하루 혹은 몇 시간의 응축된 시간으로 단편 포맷에 최적화된 틀을 마련하고, 결혼식과 49재라는 명확한 선택 구조로 서사의 추진력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카메라는 인물에게 밀착해 일상의 디테일로 감정을 쌓아간다. 근접 촬영으로 배우의 표정과 호흡을 길게 포착해 관객을 영순의 내면으로 끌어당긴다.


이런 '생활 밀착형' 조명은 칸영화제가 관심을 가지는 인티머시(Intimacy) 계열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수상작 '해바라기가 제일 먼저 알았다(Sunflowers Were the First Ones to Know)'는 여성 노인의 내면, 2023년 수상작 '노르웨이의 자식들(Norwegian Offspring)'은 남성의 성적 억압을 다루며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졌다.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단편영화 '첫여름' 스틸 컷[사진=메가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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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감독 역시 시선의 전환을 시도한다. 노년 여성을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 삶'이 아닌 '욕망과 해방을 실천하는 몸의 삶'으로 제시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해방은 가능한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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