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대화방서 불법 촬영물 조직적 공유
음란물 처벌 수위 낮고, 구체적 법 조항 없어
구독자 20만 명 넘는 하위그룹도 존재해
중국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과 성 착취물이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공유하는 대규모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다.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중국판 N번방'이라 불리는 이 집단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엄벌을 요구하는 등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 목소리에도 중국 당국은 침묵을 지킨 채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게시물들을 삭제하는 등 검열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N번방과 유사한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공통으로 텔레그램이나 바이두, 큐큐(QQ) 등 암호화된 통신 서비스나 해외 서버를 이용한 익명 플랫폼을 이용했으며, 피해자 대부분이 중국 여성들이다. 아시아경제DB
25일 연합뉴스는 미국 CNN방송과 호주 공영 ABC방송 등을 인용해 최근 중국에서 텔레그램을 통해 수십만 명이 연루된 대규모 성범죄가 발생한 가운데, 중국 당국이 오히려 피해 사실에 대한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3일 중국 남방도시보와 영국 로이터통신 등은 '마스크파크 수둥룬탄'이라 불리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비밀리에 촬영된 여성들의 사진과 영상이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이 중국 남성들로 추정되는 이 채팅방에는 익명 사용자 10만 명 이상이 모여 있다. 채팅방과 연계된 최소 20개의 하위 그룹 중에는 구독자가 22만 명이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들 그룹은 성 착취를 목적으로 피해자 유형이나 신체 특징, 특정 상황 등을 기준으로 분류돼 운영되고 있다.
SNS 타고 각종 폭로 이어져
일부 그룹에서는 불법 촬영 영상 장비까지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매체 연합조보는 "물컵, 멀티탭 등 일상생활 속 물건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으며, 공중화장실, 지하철, 쇼핑몰 심지어 병원 초음파실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사진·영상과 더불어 인스타그램 계정 등 개인 정보까지 함께 유포되기도 했다.

채팅방과 연계된 최소 20개의 하위 그룹 중에는 구독자가 22만 명이 넘는 곳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들 그룹은 성 착취를 목적으로 피해자 유형이나 신체 특징, 특정 상황 등을 기준으로 분류돼 운영되고 있다 아시아경제DB
원본보기 아이콘지난달 채팅방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각종 폭로가 이어졌다. 중국 SNS 웨이보 등에서 누리꾼들은 여자친구, 부인, 딸, 심지어 어머니를 몰래 촬영한 음란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중국 누리꾼은 마스크파크를 '중국판 N번방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공분하고 있다.
'N번방 사건'은 2018~2020년 텔레그램을 통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로, 한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적·제도적 변화를 이끈 사건이다. 주범 조주빈과 문형욱에게는 각각 징역 40년, 36년형이 선고됐다. 로이터는 촬영 장비 판매까지 연계된 형태로 이뤄진 이번 마스크파크 사건에 대해 "한국의 N번방보다 더 은밀하고 구조적으로 자율화된 디지털 착취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허술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가 피해 키워
사태가 심각함에도 중국의 허술한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가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형법은 도청 또는 촬영 장비를 불법적으로 사용한 경우 최대 2년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할 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또, 불법 촬영 카메라가 빈번히 설치되는 호텔 등 시설 운영자에 대해서도 명확한 책임 규정을 두지 않아 불법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도 하다. 연합조보는 "이런 사건의 대부분이 경미한 행정처분으로 해결되며, 형사 처벌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CNN은 체제 안정에 집착하는 집권 중국공산당이 사회운동이나 불만·반대 의견을 표하는 조직적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여성 권리를 옹호하는 캠페인도 강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일부 중국의 여권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의 N번방과 유사하지만, 결과는 다를 것이라며 비관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N번방 사건 주범들이 붙잡혀 징역형을 받았고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등에 나섰지만, 중국에서는 유사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텔레그램이 중국에서 차단돼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해야 하는 플랫폼이어서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 당국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2년부터 불법 촬영물을 추적해온 남성인 저우닝허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에 십수차례 전화를 걸었고 불법 음란물 단속 당국에도 최소 30건의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처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년 전 윈난성의 거리에서 자신의 치마 아래를 불법 촬영한 남성을 경찰에 신고한 20대 여성 또한 또한 "남성 경찰이 가해자에게 구두 경고만 했다"고 돌아봤다. '프래니'라는 가명을 요청한 30대 여성 변호사는 중국에서는 불법 촬영이 심각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그 밖의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 한 형사고발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N번방과 유사한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공통으로 텔레그램이나 바이두, 큐큐(QQ) 등 암호화된 통신 서비스나 해외 서버를 이용한 익명 플랫폼을 이용했으며, 피해자 대부분이 중국 여성들이다. 하지만 텔레그램 익명 채팅방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거나 적극적으로 신고하기 쉽지 않아 반복되는 피해에도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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