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로부터 자유로운 산업은 거의 없다. 산업 현장별로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이렇다 할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여기저기에 더러 존재할 뿐이다. 한동안 꽤 시끄러웠던 사고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린 어느 기업의 관계자는 "잠깐이든 장기간이든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시간에 역설적으로 안전불감증이 움트는 것 같아 늘 불안하다"고 했다. 예방을 위한 노력과는 무관한 수많은 재해의 잠재 요인이 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안전이라는 결과값은 '비용+시간+각종 규제 등의 시스템'으로 도출된다. 최근의 잇단 중대재해 사고도 본질적으로 이런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저 공식에 등장하는 요소 하나하나에 복잡계와도 같은 오묘한 이면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비용과 시간이라는 변수는 대내외 제반 경제 여건에 일정 부분 종속되고 개개인의 크고 작은 방심이나 일탈에 의해 훼손되기도 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이런 변수를 커버하기란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각종 지표가 그 증거라고 하겠다. 심지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3년 동안 공공부문에서 수십 명이 일하다가 죽었는데 중대재해처벌법 혐의로 기소된 기관은 한 곳뿐이고 기관장이 기소된 사례는 전무하다고 하잖는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면허 취소' '주가 폭락' 같은 언급으로 기업들을 유례없이 강하게 질타한 이재명 대통령이 청도 무궁화호 관련 사망사고를 두고는 그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곧이어 기업들을 대거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돌입한 관계 기관들이 조용하기만 한 상황은 그래서 이상하다. 대통령이 민간기업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거나 여론의 환심 등을 의식한 데서 비롯된 정치적 언사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산업계 안팎에서 고개를 드는 이유다.
엄포와 엄벌주의만으로는 산업재해를 완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대통령과 정부가 모를 리 없다. 2022년 이후 3년 동안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중 약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고용노동부)은, 대중의 주목도가 높고 유명한 몇몇 대기업을 마치 본보기인 것처럼 두들겨 패고 군기 잡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점을 웅변한다. 여당에선 이런 사정을 근거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런 방식은 산업 작동의 원리를 왜곡하고 기업들의 생산성 자체를 갉아먹어 예상하기 어려운 중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업재해의 이면에는 산업 부문의 양극화, 현장 시스템의 고도화,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장 인력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 등 규제의 차원을 뛰어넘는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 구조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건 다름 아닌 기업이다. 정부가 기업과 대립하고 기업을 단죄하는 데 힘쓰기보단 기업과 머리를 맞대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고 보완책을 모색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김효진 바이오중기벤처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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