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배당금으로 생활, 주가조작 원스트라이크아웃. 국민성장펀드 조성. 야심 차게 시작한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청사진이다. '코리아프리미엄 실현으로 코스피 5000 시대 도약'은 국정기획위원회 12대 중점 전략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실체화하기 위한 세부 추진계획도 속속 마련되고 있다. 자본시장을 경제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정향성은 환영할 만하다. 추진 어젠다들은 실용과 공정을 중시하는 신정부의 국정철학과도 부합하는 듯하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논의는 거대 담론이다. 기업의 지배 구조 선진화 및 수익성, 성장성 개선, 거래소 및 장외시장의 구조 개편, 성장 기업에 대한 장기자본 공급 강화, 디지털 자산의 방향성 설정, 합리적 세제 및 규제 마련 등. 이미 정답은 공개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정답에 이르는 과정이 지난할 뿐이다. 이 중 가장 기본은 투자자의 신뢰 제고이다. 공정에 대한 믿음. 수익률 향상에 대한 확신이 전제된다면 장기자본 유입을 통한 지속적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시장에서 공정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 비율이 거래대금 기준 주요국보다 두 배 이상인 70%에 이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개인투자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대주주 양도세 기준금액이나 과거 공매도 금지 시행이 한 예이다. 논리적 정합성, 실증분석 결과, 옳고 그름에 앞선 것이 개인투자자의 여론이다. 공정과 평등, 정의 사이에서 개인투자자들과의 접점을 찾는 일은 어려운 과업이다.
그럼에도 선량한 시장참여자라면 이견이 없을 신뢰제고 방안은 많다. 우선 불공정거래의 축출이다. 내부거래,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은 투자의지를 절멸시키는 악의 축이다. 법 위반으로 인한 수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위법행위가 반복된다. 최종 제재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형량도 그다지 높지 않다. 거래소, 금감원, 금융위(증선위), 검찰로 이어지는 제재절차를 단기화, 단일기관화해야 한다. 주가조작 합동대응단이 출범했으나 기관 간 이해관계가 제대로 조율될지 의문이다. 이상거래 인지, 검사, 조사, 심의, 의결, 수사 등 일련의 과정은 원스톱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주창해 온 한국판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필요한 이유이다. 금융기관 제재나 회계 및 공시 위반 업무까지 독립시키기 어렵다면 불공정거래만이라도 전담하는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주주권 강화도 필수적이다.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가 큰 우리나라에서 특히 그렇다.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도입은 그래서 함의가 깊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의 2차 상법 개정안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기관투자가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수탁자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다수의 기관투자가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했으나 유명무실하다. 일본의 경우 의결권 행사 결과를 기업 및 의안별로 공표하고 찬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일본공적연금(GPIF)은 위탁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정합성 분석을 통해 위탁자산 비중을 조정하거나 운용사 지위를 박탈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단 한 주라도 직접 보유한 기업에 대한 위탁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오히려 형해화하고 있다.
장기투자 문화 정착은 시장 신뢰 제고의 핵심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자본시장에서도 통용된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주식 연 회전율은 187%였다. 코스닥은 426%였다. 증시가 부진해 15년 내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 이 정도이다. 미국 일본보다 2배 이상이다. 장기보유 주식에 대한 배당금 세율을 차등화, 대폭 낮추어야 한다. 미국은 1년 기준, 프랑스는 보유 기간별, 일본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통해 배당소득 세율을 상이하게 적용한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혜택 강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들의 투자시계를 장기화하는 성과평가 제도의 개편도 제의한다.
진정한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투자자. 기업, 금융당국의 유기적인 관계정립은 불문가지이다. 사회적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요즈음,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정에 기초한 투자자 신뢰제고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양질의 자금을 공급받고 투자자는 수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건전하고 성장하는 자본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재명 정부가 마무리될 즈음 코스피지수가 실제로 5000에 도달하여 진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한이 없겠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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