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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현실이 된 '기후플레이션'…장바구니부터 중앙은행까지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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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인플레로
물가 상승·금리 부담 악순환

한국에서 '폭염=배추값 급등=금배추' 현상은 이미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올해 역시 예외는 없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7월 말 배추 소매가격은 폭염과 집중호우 여파로 포기당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한국은 김장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서 배추 가격에 유독 민감하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에서 이 같은 현상을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고 일컬으며 한국의 배추 소매가는 종종 포기당 1만원에 육박할 만큼 급등해 '금배추'라는 별칭까지 등장했다고 적었다. 기후플레이션은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물가 상승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 같은 기후위기발 물가 압력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정책과 직결되며 통화당국의 고민을 한층 깊게 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화할수록 '자연재해 발생 → 물가 상승 → 금리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배추·감자·초콜릿…이상기후가 장바구니 물가 위협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가격 불안은 이미 전 세계 가계의 식탁 물가를 흔들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BSC)에 따르면 감자, 쌀, 양파, 상추, 과일 등 주요 식료품 가격은 폭염·가뭄·폭우 같은 기후 충격과 맞물려 급등세를 보였다. BSC의 막시밀리안 코츠 박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탄소 배출량이 넷제로(Net-zero)에 도달하기 전까지 기상이변은 더 심각해질 것이며, 이미 세계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와 식품 가격 상승을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포커스] 현실이 된 '기후플레이션'…장바구니부터 중앙은행까지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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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통계는 실제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가뭄으로 이듬해 11월 채소 가격이 전년 대비 80% 폭등했다. 에티오피아에서도 2022년 가뭄의 여파로 2023년 3월 식료품 가격이 40% 치솟았다. 영국은 2023년 가을 기록적 폭우를 겪으면서 2024년 2월까지 13개월간 감자 가격이 22% 올랐다. 또 2022년 유럽 전역을 강타한 폭염은 식량 공급을 위축시켜 식품 가격을 0.66%포인트, 전체 인플레이션을 0.33%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루마니아·헝가리·남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상승 폭이 이보다 훨씬 컸다.


기상이변에 따른 공급 충격은 커피와 초콜릿 같은 기호식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공급망 차질이 발생하면 이를 원재료로 하는 식품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2024년 2월 주요 코코아 생산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가 기록적 고온과 장기 가뭄으로 동시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코코아 공급이 급감했다. 그 결과 불과 두 달 만에 코코아 가격은 3배 이상 치솟았고, 영국 소매점에서 초콜릿 가격은 1년 새 18%나 올랐다.

단기적인 날씨 변수에 따른 원두 가격 변화가 커피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인 피터 나바로의 저서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에도 잘 나와 있다. 세계 최대 아라비카 원두 생산국인 브라질에 폭우·가뭄·서리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원두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다. 이는 즉시 국제 커피 선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다. 나바로의 책에 담긴 함의를 기후 충격에 빗대 해석하면 기후 충격 → 원두 가격 상승 → 스타벅스 같은 체인의 원가 압박 → 판매가격 인상 → 소비자 부담 증가 → 수요 둔화 → 기업 실적 악화라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는 기후 리스크가 실물 자원 가격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실적에도 구조적 위험을 안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2023년 가을 브라질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면서 글로벌 커피 가격은 2024년 초 전년 대비 55% 급등했다. 베트남과 아시아 지역에선 폭염 탓에 로부스타 커피 가격이 2024년 7월 한 달 동안 무려 두 배나 치솟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급등세의 배경에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로 못 잡는 물가…중앙은행 고민 깊어진다

식탁 물가 급등은 단순히 가격 문제를 넘어 저소득층의 건강도 위협한다. 영양가 높은 식품은 칼로리당 평균 두 배 이상 비싸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층은 자연스럽게 과일과 채소 섭취를 줄이게 된다. 이로 인해 영양실조와 심혈관 질환, 당뇨, 암 등 만성질환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정신 건강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타임지는 영양소 밀도가 높은 식품의 비용 상승은 특히 저소득층에 부담이 크다며,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는 저렴한 고열량·저영양 식품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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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품 가격 급등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에도 변수가 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기후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의 새로운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23년 연구를 통해, 고온 현상이 식품과 전체 물가지수를 자극해 이후 12개월간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저위도 지역에서 그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지적됐다. 네이처는 2035년을 기준으로 식품 인플레이션이 연간 0.92~3.23%포인트, 전체 인플레이션은 0.32~1.18%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존의 금리 정책만으로는 이 같은 기후발(發)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제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후재난은 대체로 공급자 측 충격을 동반하는데, 이는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수요 억제 수단인 금리 인상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수 있다. 예컨대 폭염이나 홍수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식품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곧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이 같은 비용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 침체 위험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라 브리든 영란은행 부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공급 충격을 통해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는 중앙은행들이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재난이 남긴 1조 달러 청구서…기후발 물가 충격 지속될 것

비용 손실도 막대하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은 2024년 한 해에만 산불·홍수 등 기후 재난 복구에 약 1조달러를 지출했다. 미국 노동경제연구소(IZA)는 산불 연기가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주면서 일자리와 임금 손실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산불이 자주 발생한 해에는 미국 전체 근로자 총소득이 약 2%(1250억달러) 감소했으며, 특히 고령 근로자일수록 피해가 더 컸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후발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2.2~3.4도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례 없는 기후 현상과 식품 가격 충격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위험이란 의미라고 분석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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