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근로 의욕 저하" 연구결과 이어져
고용 질·삶의 질·노동 소득 증대 효과도 미미
저소득층에 기본소득을 제공할 경우 노동시장 참여가 소폭 감소하는 대신 여가가 대폭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여유가 생긴 이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탐색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근로의욕이 줄어들었고 고용의 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기적인 생활 안정에는 도움이 됐으나 고용의 질 개선이나 장기적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금성 복지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기본소득 지급하자 노동 줄이고 여가 늘려"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ESWC)에서는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제안한 기본소득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오픈리서치 연구진은 2020년 10월부터 3년간 미국 일리노이·텍사스주의 저소득층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약 140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고, 비교군 2000명에는 월 50달러만 제공했다.
그 결과,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연간 총소득이 약 2000달러 감소했고, 노동시장 참여율은 3.9%포인트 하락했다. 주당 근로 시간이 1~2시간 줄었으며 배우자 역시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대신 여가를 대폭 늘린 점이 두드러졌다. 또한 고용의 질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고 교육 투자나 삶의 질 개선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노동 공급 감소는 분명했지만 그 시간을 교육·재취업 등 생산적 활동으로 대체하는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본소득이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서울시 '디딤돌 소득', 소비 확대·정신건강 개선…그러나 고용효과 제한적
같은 세션에서 이정민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서울시가 실시한 '디딤돌 소득' 시범사업의 단기 효과를 공개했다.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 (재산 3억26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조해준 이 제도는, 가계 총소득과 소비지출을 증가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반면 고용이나 노동소득 증가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단기적 가계 안정에는 도움이 됐지만 노동시장 연계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다. 다만 소득 지원이 정신건강 지표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은 확인됐다는 평가다.
파키스탄 실험, "돈 나눠줘도 체감 못 해"
현금성 지원이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은 완화했지만 지원받은 대상자가 이를 체감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됐다. 임란 라술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 등은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서 이뤄진 현금 지원 실험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현지 농촌 1만5000가구에 620달러(약 86만원) 상당의 일회성 자산이나 동일 규모의 조건 없는 현금을 제공한 뒤 주민들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수혜 가구는 경제적 이익을 얻고 마을 내 불평등도 줄었으나 주민들의 인식 변화는 크지 않았고 재분배에 대한 태도나 정치적 성향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빈곤 완화 정책이 경제 현실을 바꿀 수 있지만 사회적 인식 전환은 더딜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일련의 실험은 현금성 지원이 즉각적인 소득 안정과 소비 진작 효과를 주지만, 동시에 근로 의욕 저하와 고용 구조 개선 한계라는 부작용을 드러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재정 여건과 사회적 합의를 고려한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며 "단순한 현금 이전보다는 교육·재취업 프로그램, 보육·의료 지원 등 다층적 안전망과 결합할 때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서지영 기자 zo2zo2zo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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