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월화수목금금금 '연중 무휴'…24시간 일 시켜도 비난 안 받는 '이 공장'[일의 미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사람 없는 스마트 랩·팩토리와 일자리 관계
24시간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AI와 로봇
무인공장 운영 삼성전자 직원은 증가
LG전자 스마트 팩토리 수출도

사람 대신 기계가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이어 생산까지 하는 시대가 왔다. AI가 연구 개발을 맡아 신제품을 설계한다. 로봇이 AI의 손발 노릇을 해 테스트하고 시제품까지 만든다. 사람이 일하는 것이 아니니 근로기준법 50조는 무의미하다. 쉽게 말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지킬 필요가 없다. 1년 내내 하루 24시간 연구, 실험실이 돌아간다. 이른바 스마트랩(Smart Lab)이다.


이후 대량생산도 로봇과 AI가 맡는다. 여기도 24시간 돌아가는 무인공장이다. 요즘 한창 뜨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란 단어가 바로 사람 대신 로봇과 AI가 일하는 무인공장을 말한다. 스마트랩과 다크 팩토리의 공통점은 AI와 로봇이 일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시설 내부에 사람이 없다.

샤오미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는 다크팩토리 내부

샤오미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는 다크팩토리 내부

AD
원본보기 아이콘

스마트랩과 다크 팩토리는 첨단과 미래를 상징하는 단어다.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쉬지 않고 물건이 나오는 꿈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스마트랩과 다크 팩토리란 단어에 암울하고 절망적인 미래가 보인다는 사람도 있다. 생산뿐 아니라 연구개발까지 모두 로봇이 한다. 그렇게 나온 물건을 결국 사람이 사야 한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일을 사람 대신 AI와 로봇이 한다. 결국 아무리 좋은 상품이 나와도 살 수 있는 사람이 확 줄어든다. 현재 스마트랩과 다크 팩토리는 어느 정도까지 발전한 상태일까. 실제 생산라인을 대부분 자동화한 회사는 고용구조가 어떻게 바꿨을까. AI와 로봇이 개발하고 생산까지 하는 시대 사람이 설 곳이 있을까.


일단 스마트랩부터 자세히 들여다보자. 현재 스마트랩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제약, 바이오 업계다. 스마트랩과 가장 궁합이 좋기 때문이다. 화학이나 바이오, 제약 분야 석박사, 연구원들은 스스로 하는 일을 자조적으로 ‘노가다’라고 부른다. 같은 실험을 수백번하고 결과가 나와도 조건을 바꿔서 다시 수백번 반복해야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번 실험을 해도 결과가 조금씩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험 시 온도나 먼지 때문에 결과가 확 바뀌는 일이 흔하다. 재료 함량이 미세하게 변해도 확 다른 결과가 나온다. 결론을 내기 위해선 실험 준비, 정리, 기록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단어가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것이 ‘월화수목금금금’이다. 휴일도 없이 주 7일 근무를 1년 내내 반복한다는 의미다. 이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황우석 박사다. 그는 한때 탁월한 연구성과를 잇달아 발표해 바이오 분야를 대표하는 국민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연구윤리 위반, 실험 결과 조작이 드러나 사기꾼으로 지탄받는 신세로 전락한 복잡한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국민 영웅 시절 황 박사는 “우리는 '월화수목금금금,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달력'에 따라 연구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단어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바이오 분야 종사자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내고 가설을 세운 다음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 지옥에 빠진 연구자들이 생활이 바로 전형적인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스마트랩을 긍정적으로 보면 연구자들을 실험 지옥에서 빼낼 도구다. 반복적인 실험, 말하자면 노가다를 연구자 대신 자동화 시스템이 한다. 심지어 실험 조건을 설계하는 것도 AI에 맡길 수 있다. 사람이 연구 과정에서 하는 일은 아이디어를 내고 가설을 세우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AI와 로봇의 몫이다.


바이오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스마트랩을 구축하기 위한 장비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는 자동화 플랫폼 ‘알리니티’ 시리즈를 내놨다. 시간당 최대 검사 수가 1550건에 달하는 시스템이다. 면역화학, 혈액학, 분자진단 등 병원에서 필요한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다. 지멘스헬시니어스는 하나의 시료로 20~30개 검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아텔리카’ 플랫폼을 출시했다. 내장 AI 알고리즘을 통해 검사 항목 분류부터 품질 관리를 하고 스스로 유지 보수 작업까지 한다.


사람 대신 스마트랩이 하루 24시간, 월화수목금금금,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한다. AI 기반 의료기기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 자료를 보면 작년 허가받은 AI 기반 의료기기는 235건. 2015년(6건)보다 약 40배 늘었다. 국내 2024년 AI 의료기기 승인은 108건이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랩을 세우는 곳이 늘고 있다. KAIST와 포스코 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 LIB 소재연구센터 연구팀은 최근 AI 및 자동화 기술을 활용한 ‘2차전지 양극 소재 자율 탐색 실험실’을 공개했다. AI를 기반으로 연구자 없이 로봇이 스스로 실험을 설계, 수행, 분석해 최적의 소재를 찾는 플랫폼이다. 2차전지 양극 소재를 개발하려면 빠른 충전 속도, 높은 에너지 밀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시제품을 만들고 반복 실험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연구자들이 일일이 이 작업을 했다. 연구팀은 이를 로봇이 대신 하도록 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KAIST 측은 “자동화 연구실을 24시간 운영해 같은 기간에 과거보다 12배 많은 실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포스코 홀딩스는 자율 탐색 실험실을 내년부터 적용해 차세대 2차전지 소재 개발 속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국재료연구원(KIMS)도 지난 6월 AI 기반 ‘KIMS 오토노머스랩’을 공개했다. 오토노머스랩은 연구자가 재료의 목표 특성을 입력하면 AI가 가장 효율적인 실험 조건을 찾고 로봇이 자동으로 실험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테스트 결과를 AI가 분석한 뒤 스스로 다음 실험을 한다. KIMS 측은 “실험실 장비를 만질 필요가 없다”며 “컴퓨터 앞에서 간단한 명령만 입력한 뒤 실험 전 과정을 지켜보면 그만”이라고 했다. 스마트랩 관련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 인포메이션은 2024년 기준 72조4000억원인 실험실 자동화 시장이 2030년 122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


이름에서 어쩐지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다크 팩토리 내부를 들여다보자. 스마트랩에서 로봇과 AI가 한 작업을 다시 로봇과 AI가 실제 상품으로 만드는 곳이 바로 다크 팩토리다. 대표적인 다크 팩토리가 바로 중국 샤오미의 창핑 공장이다. 창핑 다크 팩토리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초당 하나씩 24시간 1년 내내 토해낸다. 공장 이름이 다크 팩토리인 이유는 말 그대로 내부엔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기 때문이다.


안에서 일은 하는 로봇은 사람과 달리 조명이 없어도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샤오미가 공개한 공장 내부 영상을 보면, 어두운 공장 내부에선 모니터만 빛을 내뿜는다. 부품은 드론이 나른다. 드론은 레이다와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nging, 레이저를 발사해 주변 환경을 입체적으로 읽는 기술)로 주변을 인식하기 때문에 빛이 없어도 그만이다.


연중무휴 돌아가는 창핑 공장이 차지하는 면적은 8만1000㎡(약 2만4500평), 설립 비용은 3억3000만 달러(약 4455억원)라고 한다. 공장 생산 시설은 모두 일정 수준의 AI와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갖추고 있어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AI, 로봇이 24시간 일하는 생산시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샤오미 이외에도 폭스콘, 지멘스 등 제조업체들이 이미 다크 팩토리라고 부르는 생산시설을 만들었다.


외국 업체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사람이 없이 24시간 제품을 뽑아내는 자동화 생산라인은 새롭다고 할 수 없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런 생산라인들이 돌아가고 있다. 사실 이런 시설들이 한국을 제조업 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삼성전자 기흥 캠퍼스엔 시창(視窓) 투어 공간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대형 유리를 통해 반도체 생산 라인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는 공간이다. 안에 들어가면 보이는 공간이 축구장 여러 개 크기다. 시창 투어를 한 사람들이 제일 놀라는 점은 그 넓은 공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생산설비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그때 직원들이 해당 설비로 가서 해결한다. 공장 안에서 상시 일하는 사람은 없다는 설명이다. 이후 지어진 최신 설비인 평택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이후 지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엔 상시 일하는 사람이 없다. 관제센터에서 라인을 모니터링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들어가 해결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물류 이송을 담당하는 로봇 OHT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물류 이송을 담당하는 로봇 OHT

원본보기 아이콘

일은 로봇이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원료인 웨이퍼를 공장까지 가져가 운반 로봇인 OHT(Overhead Hoist Transport)에 실으면 이후엔 OHT가 출고까지 제품 운송을 책임진다. 최대 초당 5m를 이동하는 OHT가 삼성전자에는 1000대 이상 있다. OHT가 하루 이동하는 거리를 모두 합치면 지구를 수십바퀴 단위로 돌 수 있다고 한다. 사람 없이 하루 24시간 1년 내내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삼성전자 기흥, 평택 캠퍼스는 블랙 팩토리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에서 지켜보기 위해 공장 내부를 하얀 조명으로 가득 채웠다는 점에선 화이트 팩토리다.


사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사업 상당수가 24시간, 1년 내내 공장을 돌린다. 반도체뿐 아니라 철강, 정유 생산설비도 특성상 24시간, 주 7일, 연간 무휴다. 반도체, 철강, 석유 등은 한번 멈추면 다시 공장을 정상적으로 돌리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잠시라도 라인이 멈추면 재앙이다. 당연히 생산 과정 전부를 사실상 자동화해 놓은 상태다.


사실 우리나라는 무인, 24시간, 연중무휴 생산체계에선 세계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나라다. 심지어 이런 자동화 시스템을 설계, 제작해 주고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업체도 있다. 바로 LG전자다. LG전자는 작년 주문을 받아, 공장을 AI와 로봇 기반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업을 시작해 3000억원의 매출을 냈다. 사업을 맡은 LG전자 스마트팩토리 사업 담당 송시용 상무는 “북미와 동남아 고객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 올해는 4000억원 매출을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LG전자는 1980년대 이미 공장자동화 연구소를 설립, 로봇을 이용해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LG전자 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자율주행 이동로봇(AMR)

LG전자 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자율주행 이동로봇(AMR)

원본보기 아이콘

자동화는 채용 규모를 줄였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임직원 숫자는 처음 조직을 개편해 DS부분을 만든 2009년 4만6298명에서 작년 7만8669명으로 약 70% 증가했다. 단순 작업을 하는 직원은 사라졌지만, 연구개발을 비롯해 인사, 마케팅 등 스태프 직원 숫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스마트 랩,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시작한 회사 고용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피해를 보는 업체는 스마트 랩, 스마트 팩토리를 만들지 못한 업체들이라고 봐야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패배하면 고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강녕 IT스페셜리스트 young100@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언론사 홈 구독
언론사 홈 구독
top버튼

한 눈에 보는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