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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P 칼럼]트럼프의 '돈 주고 사는' 무역정책, 위험한 선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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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와 반도체기업 간 합의, 전에 없던 방식
정경유착 등 우려 제기돼
트럼프식 접근법, 무역 질서 뒤엎고 있어

[SCMP 칼럼]트럼프의 '돈 주고 사는' 무역정책, 위험한 선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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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무역 질서를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최근 나온 보도 한 건으로 사라졌다. 그 내용은 반도체 대기업 엔비디아와 AMD(Advanced Micro Devices)가 중국에 판매하는 칩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내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이 돈은 수출 허가를 승인받기 위한 대가다. 미국 기업이 중국의 '인공지능(AI) 야심'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중국에 팔기 위해서는 이 허가가 꼭 필요한데, 한동안 지연됐다가 지난 8일 미 상무부에 의해 승인됐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 모두 중국에 첨단 기술 수출 규제를 강화해왔다. 엔비디아의 H20 칩과 AMD의 MI308 칩에 대한 수출 통제는 올해 초 시행됐는데, 해당 반도체가 중국 군사 응용 분야에 흘러 들어가 중국의 AI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미 정부와 엔비디아·AMD 간 이번 합의로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미국의 통상 정책이 '돈으로 사고파는 성격(monetise)'으로 변한 것이다. 기업들이 자사 제품 수출 승인을 받기 위해 정부에 돈을 내는 구조가 된 셈이다.


이전에는 건널 수 없을 것 같던 '루비콘강'을 건넌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에 '돈을 내야 참여할 수 있는(pay-to-play)'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엔비디아·AMD와의 합의를 (다른 합의의) '모델'로 삼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와 AMD 사례뿐 아니라, 최근 한국·일본과 맺은 무역 합의에서도 미국은 과도한 관세를 일부 풀어주는 대신 양국 기업들이 미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라 향후 투자로 발생할 수 있는 상당한 수익이 미 정부 금고로 흘러 들어가게 됐다.


문제는 무역 정책과 재정적 이해관계가 뒤섞이면서 생길 수 있는 우려다. 우선 미국 정부 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이번 합의가 '정경유착'이라는 인식이 퍼질 위험이 있다. 나아가 국가 안보가 관련된 판단에 금전적 고려 사항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문도 낳는다.


기존의 미국 무역 정책은 여러 부처 관리들이 현안을 분석하고 논의해 권고안을 올리는 집단적 판단에 기반해왔다. 이는 심사숙고를 거치는 과정이었고, 투명한 기준을 적용해 무엇보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방법론을 지향했다.


설령 시장 참여자나 관찰자들이 최종 정책 결정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의사결정 과정의 무결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는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이 판단 기준에 포함되면서 이 같은 신뢰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민간 기업들의 거래 및 투자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제 명백하면서도 불편한 질문들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일본과 맺은 무역 합의에서 약속한 수십억달러 투자에 대한 수익금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가? 이 같은 과정에서 수혜를 입는 기업들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무엇까지 하려 할까?


또 최근 미국과의 양자 무역 협상에서 일부 교역 상대국은 다양한 미국 제품을 일정 규모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그 제품과 관련된 주문을 어떤 기업이 받을지 결정하는 데 어떻게 관여할까?


국가 안보 평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날 것이다. 민감 기술의 수출 허가와 기업들의 정부 납부금이 연계되면서 근거 없는 추측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특정 기술 판매가 승인된 것이 미국의 전반적인 국익에 기여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십억달러의 수수료 발생 가능성 때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 상무부는 국가 안보 판단에 따라 엔비디아 H20과 AMD MI308 칩에 수출 통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국가 안보 상황이 그사이에 급변했을까?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에 수출을 허가한 것일까? 수출 승인이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만 생겨도 해롭다.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은 미국이 허용하는 기준선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정직하게 일한다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부정이나 불법이 있었다고 의심할 근거도 없다. 문제는 전례 없는 무역 정책이 만들어 낸 투명성의 부족과 불확실성의 그림자다.


취임 6개월 남짓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 역사상 글로벌 무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다. 규칙 기반 통상 질서의 기본 원칙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에도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의 접근 방식은 공식·비공식 규칙들을 빠른 속도로 뒤엎고 있다.


'상호 합의된 규칙의 우선성'이나 정부 명령이 아닌 시장 원리에 기반한 '질서 있는 무역 시스템의 가치' 같은 개념들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거침없는 상업화, 거래적 성격이 짙은 통상 정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전 세계는 새롭고도 위험한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스티븐 올슨 싱가포르 유소프 이샥 연구소 선임연구원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Trump's 'pay-to-play' trade policy sets a dangerous precedent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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