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기술 유출해도 현실상 간첩죄 적용 불가능
선진국 기밀유출 우려해 중복법률 통해 통제
해킹이나 사람으로 인한 방산기업을 유출해도 형법상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군사·방위산업 기밀을 유출할 경우 선진국에선 엄중 처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간첩죄가 북한에 국한돼 있어 군사기밀보호법 외에는 적용할 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적용이 유일하기 때문에 형법상 간첩죄 적용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간첩죄는 적국을 위한 행위를 처벌한다. 문제는 북한이 헌법상 국가가 아니어서 적용이 어렵고 그 외 국가들은 적으로 볼 수 없어 간첩죄 적용이 불가능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방산기술을 유출할 경우 국가안전보장을 위협하고 국가 경제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방위산업기술보허법을 재규정해 간첩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밀 유출에도 간첩죄 적용 못 해=1962년 제정된 군형법에 따르면 간첩죄는 적을 위해 간첩 노릇을 한 자, 적 간첩을 방조한 자, 군사기밀을 적에 누설한 자에 해당한다. 여기서 '적'은 북한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누설 상대가 북한만 아니면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비역 공군 대장 A씨는 2006~2007년 미국 군수업체에 군사 2~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합동원거리공격탄(JASSM) 도입 관련 정보를 팔아넘겼다. 하지만 상대가 북한이 아니기 때문에 간첩죄 대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국군정보사령부 공작팀장 출신 황 모 씨도 마찬가지다. 중국 등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정보관의 명단을 유출했지만 간첩죄 대신 형법상 일반이적 등 혐의가 적용돼 2019년 징역 4년을 확정받았다.
◆현행 처벌법도 해석 따라 적용 힘들어=2015년 제정된 방위산업기술보호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걸쳤다. 처벌조항도 강화됐다. 제정 당시에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지난해 강화된 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억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허점은 있다.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제21조 1항이 문제다. 이 항에는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유출한 경우에 처벌한다고 명시했다. 법조계에서는 방위산업기술 국외유출죄가 성립하려면 외국에서의 사용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입증하기가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 선진국은 방산기밀유출에 엄격하다. 미국은 방산기술과 일반 산업기술을 나누지 않는다. 다양한 법안을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1996년 경제스파이법(EEA)를 제정해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EEA는 경제스파이로 간주될 경우 500만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방위산업과 관련된 별도 법안도 있다. 국방조달 법령인 'DoD 5000시리즈'이다. 이 법령에는 국방성의 구매관리정책, 원칙, 중요프로그램 정보보호 지침 등을 담았다. 조직도 탄탄하다. 국방성 산하 국방보안서비스국(DSS)와 방산기술보안국(DTSA)는 방산 기밀 유출에만 대응하도록 했다. 특히 해킹에 대비해 2019년에는 국방성 산하에 '미 국방정보유출 방지 및 보호국(DCSA)'를 두어 국방종사자 심사, 방산 유출 방지 등을 맡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13년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해 안보, 외교, 방위, 테러 대책 등 4개 분야정보를 통제한다. 공무원이나 방산기업 종사원의 기밀 유출을 막기 위한 법이다. 2022년에는 경제안전보장추진법도 제정했다. 국내 방위산업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첨단 기술경쟁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다. 법안에서는 대량살상무기 전용기술, 핵심 중요기술, 신영역기술 등 25개 기술을 비공개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독일도 국가 차원의 활동인 경제스파이라면 형법 제 99조를, 민간차원의 산업스파이라면 영업비밀 보호법을 적용한다.
군 법무관 출신인 이형섭변호사는 "외교안보적 현실을 반영하여 간첩죄 적용 범위를 더 확대하고,방위산업기술보호법의 입증요건을 완화하는 등 그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낙규 군사 및 방산 스페셜리스트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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