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구단, 인명사고 후 갈등 빚더니 연고지 이전 언급
지자체 러브콜에 창원 1300억 지원 발표
프로스포츠 운영 방식 되돌아보는 계기 돼야
프로야구 KIA타이거즈의 열성 팬 중에는 아직도 "좋아하는 팀"을 묻는 말에 "해태 타이거즈"라고 답하는 이들이 있다. 모기업의 취약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대기록을 세우고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했던 시절의 '해태'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년 하위권에서 1992년 이후 무려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한 한화이글스 팬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작은 승리에도 열광하며 '보살팬'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곤 했다. 이처럼 프로스포츠는 연고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강하게 맞닿아 있다. 구단, 지자체, 지역민과 팬이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 프로야구 흥행 열기 속에서 경남 창원시에서는 연고지 논란이 뜨겁다. 지난 3월 창원NC파크에서 외장 마감재가 추락해 사상자가 발생한 뒤 NC다이노스 구단은 시의 대응에 불만을 드러내며 연고지 이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다른 지자체들이 곧바로 러브콜을 보내면서 논란은 전국적 관심사로 번졌다. 여기에 허구연 KBO 총재가 유튜브 방송에서 "저는 총재 하면서 제일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요, 한 구단을 옮겨주는 거예요. 연고지 이전"이라고 말하면서 불씨는 더 커졌다.
창원시는 지난달 말 'NC다이노스 지원계획 시민 설명회'를 열고, 구단의 요청 21건을 반영해 2044년까지 20년간 1346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NC파크 관중석 2000석 증설과 2군 정식구장·전용 연습장 개보수, 숙소 건립, 접근성 강화, 주차면 확보 등이 담겨있다. 내년부터 NC파크와 마산야구장은 창원시설공단이 시설물 전반의 유지 관리를 맡고 NC구단은 그라운드와 수익시설에 대한 관리 운영만 맡도록 했다.
장금용 시장 권한대행은 "인구 유출과 경제 여건 등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프로야구는 시민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그동안 심도 있는 고민을 거듭한 만큼 설명회를 통해 시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구단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여론은 엇갈린다. 지금까지 NC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던 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반대로 "이 정도까지 해줘야 하느냐"는 불만도 많다. 같은 창원을 연고로 하는 농구팀 LG 세이커스, 축구팀 경남FC는 홀대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연고지 이전은 다른 종목에서도 반복돼 온 문제다.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은 춘천에서 아산으로, 남자프로농구 KT는 부산에서 수원으로, KCC는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다. 이유는 달라도 공통점은 비슷하다. 지자체의 지원 부족, 약속 불이행, 구단 운영의 어려움 때문이다. 허구연 총재가 지적했듯, 구단이 '세입자 신세'로 남아 홀대받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팬 서비스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둥지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프로스포츠팀과 지자체 간 갈등은 또 있다. 한화이글스와 대전은 새로운 구장 개장 이후 크고 작은 갈등을 빚고 있다. 강원도지사가 구단주인 프로축구 강원FC가 2026년부터 강릉에서 홈경기를 개최하겠다고 밝히자 춘천시는 강원FC 지원을 중단하고 시민구단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내년 지방선거는 또 다른 불씨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구단 유치" "구단 지키기" 같은 공약이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 정치인에게 프로스포츠팀은 표심과 직결되는 민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NC가 창원과 동행을 이어갈지, 새로운 연고지를 찾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연고지 문제는 단순히 한 팀이 남을지 떠날지의 선택지가 아니다. 지역사회와 지자체, 구단, 팬이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할 것인지, 더 나아가 한국 프로스포츠가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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