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유럽에선 우파 정당 약진이 두드러진다. 미국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배출했고 상·하원 모두를 장악했다. 독일에선 중도 보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이 정권을 잡았다. '40대 보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에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로 위상을 올렸다. 네덜란드, 핀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에서도 강경 우파 정당이 정부를 이끈다. '극우' 혹은 '대안 우파' 정당이 세력을 크게 넓히기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의 우파 정당인 국민의힘은 의석수 감소, 대통령 파면, 대선 패배 등 계속 내리막길이다. 외국 우파 정당과 국민의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양측은 이미지와 의제 측면에서 서로 갈린다.
정혜정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통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부각해 선거에서 성과를 냈다. 서구의 우파니, 극우니 하는 세력이 정작 현지에선 '평범하고 성실하고 상식적인 보통 사람'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보통 사람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힘 일각의 '尹어게인(윤석열 정치 복귀)' 구호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인식되면 정당은 대중으로부터 정서적으로 격리된다. 유럽 극우 정당도 아는 원리를 국민의힘은 모르는 듯하다.
의제와 관련해 유럽 우파 정당은 외국인 이민 제한을 쟁점화했고 자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서구 우익에서 공유되는 이 지향성을 상징한다. 외국인 이민자 증가가 일자리 감소와 범죄 급증으로 이어지자 이들 정당은 공감을 얻었다.
한국은 이민자 유입이 심각하지 않다. 대신 예를 들어, 중소기업의 96.7%는 알리·테무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때문에 피해를 본다(설문 조사). 불공정한 보조금에 힘입은 중국의 저가공세는 한국 기업과 소상공인을 고사시킨다. 미국·유럽 우파 정당이 하듯이 했다면, 국민의힘은 대중국 규제에 나섰을 것이고 중국과의 갈등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쇠락하는 중소기업, 소상공인, 서민이 우파 정당을 밀어주는 '문화적 반동(cultural backlash)'이 나타났을지 모른다. 이러한 반동은 미국·유럽에서 우파 정당의 집권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핵심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국가적 의제의 설정 측면에서 무색무취했고 밋밋했다는 점이다. 대신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친윤·반윤, 반탄·찬탄, 배신자 같은 내부 분란만을 내내 쟁점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극단적 주장과 거짓말, 혐오 표현을 일삼았지만, 공화당을 단결시킴으로써 자국민에 어필했다.
반면 윤석열은 비주류 인사들의 조력과 후보 단일화로 간신히 대통령이 된 후 이들을 외면했다. 윤 정권 시절 반윤은 야당보다 더 죽기 살기로 자당 대통령과 권력투쟁을 일삼았다. 윤석열과 반윤은 모두 상당수 유권자의 눈엔 '불안정하고 분열적인 집단'으로 비쳤을 뿐이다.
지금도 국민의힘 주도층은 둘로 나뉜다. 한 부류는 국민의힘이 평범, 상식, 보통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는다. 다른 부류는 당내 경쟁자에 대한 공격을 화젯거리로 포장해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배하는 방식의 퇴행적 의제화에만 익숙하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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