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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소아의료]②항암치료 받으러 고속버스 타고 4시간, 성현이의 병원 상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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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0명…응급실도 받아주지 않아
의사 대다수가 서울·인천·경기에 집중…인력격차 심화

편집자주지난해 2월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일 년 반 만에 수련을 재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중증·응급환자를 다루는 필수 진료과의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낮은 출생률과 함께 불합리한 수가체계, 갈수록 높아지는 사법 리스크 등으로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고, 기존 전문의들은 이탈하고 있다.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가 벌어지면서 갑자기 발생하는 응급 소아환자, 전문적인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증 소아질환의 진료체계도 흔들리고 있다. 태어나는 아이도 적은데, 아이들을 돌볼 의사는 더 부족한 상황. 아시아경제는 6회에 걸쳐 소아의료 체계의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어 본다.

강원도 동해에 사는 성현이(가명)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22년 소아암 중 하나인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몸에 이상을 느껴 진료를 받은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에 가 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 강릉아산병원을 찾았고, 이곳에서 다시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돼 치료를 시작했다. 강원도엔 소아백혈병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이곳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천호대교를 건너 아산병원 소아병동을 오가는 일이 3년간 이어졌다. 항암 치료 후 퇴원했다 다시 입원하는 과정이 반복됐고, 주 4회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 근처 15분 거리에 월세방을 얻어 두 달여를 지내기도 했다.


소아백혈병 환자인 성현이(가명)와 보호자인 어머니가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소아백혈병 환자인 성현이(가명)와 보호자인 어머니가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 이동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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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백혈병 환자인 성현이(가명)와 보호자인 어머니가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 승차권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형 기자

소아백혈병 환자인 성현이(가명)와 보호자인 어머니가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강원도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 승차권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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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원 치료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일도 힘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응급 상황이 발생할 때였다. 항암 치료로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상황에선 조금만 열이 나도 위험할 수 있어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하지만 강원도 내 어느 응급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무조건 서울로 와야만 했다. 성현이의 엄마는 "백혈병 환자는 열이 났을 때 바로 치료받지 않으면 패혈증 같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갈 수 있는 집 근처 응급실이 없다는 게 너무 불안했다"며 "급할 땐 주변 이웃들까지 나서서 밤이든 새벽이든 자기 차로 서울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15세 미만의 소아암 환자는 약 1300명. 이 중 소아백혈병이 40%를 차지할 만큼 흔하다. 항암 치료엔 2~3년이 걸리지만 완치율이 90%를 넘고, 치료 예후도 좋아 잘 치료받고 관리하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조혈모세포 이식이나 항암치료 등의 과정은 성인의 암 치료와 비교해 결코 쉽지 않다. 대개 치료 초반에는 입원을 하고, 이후 외래로 항암 치료를 받게 되는데 치료 과정에 따라 일주일에 4번씩 항암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서 먼 지역에 사는 환자들로서는 가뜩이나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치료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오가는 데 쏟아야 한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는 27일 "지금 제 환자들의 절반은 서울 이외 지역에서 찾아오고 있고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매우 많은 시간을 병원을 오가는 데 써야 한다"며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 근처에서 몇 달 머무르는 게 여의치 않아 경북에서 매일 통원 치료를 받은 환자도 있었다"고 했다.


현재 전국 병원에 근무하는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69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60% 이상이 서울, 인천, 경기 등에 집중돼 있다 보니 수도권과 지역 간 인력 격차는 커지고 있다. 성현이가 사는 강원도엔 단 한 명도 없고 충북과 제주엔 각각 1명뿐이다. 김 교수는 "소아암의 경우 과거엔 기본 항암은 지역에서 하고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다른 과 협진 등이 필요할 때만 서울 병원으로 의뢰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소아암을 볼 수 있는 전문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지방의 경우 입원환자를 볼 인력도, 당직을 설 여력도 없어 소아암 치료 자체를 시작할 수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소수의 의료진이 진료를 이어가다 보니 병원에 따라선 의사 중 한 명이 병가라도 가면 자칫 진료가 멈출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진다. 환자를 치료할 기술이 충분하고 치료를 통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은데도 의료인력이 부족해 치료 차질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무너진 소아의료]②항암치료 받으러 고속버스 타고 4시간, 성현이의 병원 상경기 원본보기 아이콘

이 때문에 정부는 소아암을 적정한 의료서비스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필수의료 분야로 판단하고, 지난해부터 서울을 제외한 전국 5개 권역에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하기로 했다. 병원 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입원전담의, 촉탁의, 타 분과 소아과 전문의가 협력해 전담팀을 구성하거나 대학병원(거점병원) 소속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지역 병·의원에 근무 중인 소아암 치료 경험 전문의가 거점병원의 진료에 참여하는 방식, 소아암 전문의가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소아암 외래진료를 지원하는 방식 등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방 거점병원은 최소한의 방어막일 뿐 수가 인상과 같은 실질적인 혜택 없이 거점병원만 육성하려 하면 제대로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환자들이 서울 병원보다 집에서 가까운 지역 병원을 선택하게 하려면 오랜 기간, 정말 많은 재정과 인력 투자가 이뤄지고 치료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라며 "소방서가 불 끄는 횟수가 적으니 소방 인력을 줄이겠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단기간의 실적으로 평가하고 지원 여부가 결정되거나 지원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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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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