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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맥]트럼프 관세정책과 새도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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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맥]트럼프 관세정책과 새도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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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정치를 거래적으로 생각한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상대가 대응하지 못하도록 강경하게 행동한다. 어떻게든 이기는 구도를 만들어내고 성공을 이벤트화해서 효과를 극대화한다. 상대와의 장기적 관계나 상호신뢰 등은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다.


독재자 연구로 유명한 티모디 스나이더 교수는 새디즘과 포퓰리즘 합성어인 새도포퓰리즘(Sadopopulism) 용어를 만들어냈다. 하버드대 등 미국 대학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탄압을 비판하며, 올해 4월 그는 예일대를 떠나 캐나다 토론토대로 옮겼다. 그의 새도포퓰리즘 개념에 따르면, 트럼프 정책(트럼피즘)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유권자를 진정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적을 응징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을 포함한 미국이 무역수지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고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몰아 강제출국시키고 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고용통계를 통계 조작으로 몰아 담당 국장을 해고했다. 이들 모두 새도포퓰리즘 여건을 만드는 과정이다.


유럽연합(EU), 일본 및 우리나라로부터 천문학적인 규모의 펀드를 받아냈고 미국이 펀드를 운용해 수익의 90%를 가져가겠다고 미 국민들에게 언급하는 것은 새도포퓰리즘의 끝판왕이다. 상대국이 무릎 꿇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자기 정책을 지지할 것으로 믿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우리나라는 '정치인의 정치적인 수사'로 치부하고 있으나 반복되는 레토릭은 비상식적인 처사를 합리화해 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아무리 미국 시장접근에 대한 입장료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를 하는 국가가 있을 수 없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더라도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지속될 것이다. 또 대공황과 같은 충격이 없는 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한 관세정책이 수정되는 데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고관세 부작용을 인식하더라도 재정중독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관세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어 미 국민이 부담하겠지만 관세 수입은 미국이 국가부도(디폴트) 리스크에 빠지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해 줄 수 있다. 더군다나 관세 수입을 미 국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줄 것이란 언급도 있었다.

올해 초에 부채 한도가 일부 조정됐지만 미 연방정부는 여전히 디폴트 리스크를 직면하고 있다. 2025년 8월 기준 미국의 국가 부채는 37조 달러를 넘어섰다. 국가 부채에 대한 이자에만 국방비보다 많은 1조 달러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관세 수입 증가를 떠벌리고 있지만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 지난해보다 관세 수입이 2배 늘었지만, 아직도 전체 연방정부 수입에서 2%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결국 국채를 더 발행해야 연방정부 지출을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 국채가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미 국채를 대량 갖고 있는 국가가 물량을 쏟아낼 수도 있다. 이 경우 국채 가격이 바닥을 칠 것이고 미국은 디폴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은 국채를 사줄 나라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이 EU·일본·한국으로부터 약속받은 1조5000억 달러를 용처를 자신들이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현 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는 작년 말 발표된 미란 보고서의 수정판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말 금융기관에 근무하던 스티븐 미란은 상식 밖의 '0% 100년 국채' 강매를 제안했다. 이 보고서가 맘에 들었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경제자문위원장(CEA)으로 임명했다.


미국과의 관세 합의로 큰 산 하나를 넘었지만, 더 험악한 여러 개의 산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나라 일 년 예산의 80%에 해당하는 투자 금액은 너무 큰 부담이 된다. 그리고 새도포퓰리즘에 기반한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에서 벗어나 대미 투자가 우리 국익에 부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의에서 트럼프식 새도포퓰리즘에 더 이상 당하지 않는 것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교수 전 통상교섭본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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