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8000만뷰 돌파, 역대 1위 가능성↑
속편 없는 오리지널로 디즈니 아성 위협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넷플릭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에 따르면 지난 13일까지 누적 시청 수는 1억8460만뷰로,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레드 노티스(2억3090만뷰·2021)'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4630만뷰 차이로, 이달 말 정상 등극이 유력하다. 케데헌의 최근 4주간 한주 시청 수는 평균 2600만뷰다. 시청 수는 누적 시청 시간을 상영 시간(러닝타임)으로 나눈 값으로, 케데헌의 누적 시청 시간은 3억760만시간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애초 이 정도의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애니메이션 영화나 시리즈로 재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주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제작자들을 영입해 제작한 '씨 비스트(2022)' '오버 더 문(2020)' '마술 사냥꾼 대니얼 스펠바운드(2022)' 모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드림웍스나 일루미네이션 같은 유명 스튜디오의 해묵은 애니메이션 작품에 기대야 했다.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도 다르지 않았다. 케데헌 프로젝트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니 소속인 매기 강 감독은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과 함께 악령 사냥꾼이자 K팝 아이돌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그러나 상부에 제출한 제안서는 한국 문화가 강한 영화를 아시아 배우들로만 채우는 작업 자체가 모험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강 감독은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비슷한 선례가 없어 부정적이었다. K팝의 세계적 인기도 언제 내리막으로 돌아설지 모른다며 불확실하게 봤다"고 말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를 찾아가 대본 초안과 데모곡, 아트워크, 스토리보드로 만든 장면 편집본 등을 건네고 협업을 요청했다. 넷플릭스는 애니메이션 샘플에 매료돼 제작을 결정했다. 두 감독이 모두 소니 소속이라서 소니에 제작을 일임하고, 배급과 투자를 맡았다. 덕분에 소니는 재정적 위험을 피하면서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호명될 만한 작품을 만들었고, 넷플릭스는 새로운 히트작을 손에 넣었다.
이들은 할리우드에 새로운 미래 비전도 제시했다. 바로 속편이나 검증된 사례에 집착하던 경향의 청산이다. 애니메이션 왕국인 디즈니는 최근 상징주의와 자의식으로 점철된 작품을 연달아 제작했다가 손해를 봤다.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위시(2023)'가 대표적인 예다. 이전의 고전 애니메이션들을 참고한 뻔한 설정과 정교하지 못한 연출로 1억달러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실사로 제작한 '인어공주(2023)'와 '백설공주(2025)'도 주인공의 피부색 변경 외에 원작과 큰 차별점이 없고,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강요하다시피 해 쓴잔을 마셨다. 그나마 속편들의 사정은 나았다. '모아나 2'가 수익 10억달러를 돌파했고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주토피아 2'도 선전이 예상된다.
케데헌은 속편이 아니고 기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지도 않았다. 중심인물도 K팝 그룹으로, 기존의 공주나 말하는 동물에서 벗어나 있다. 디즈니 스타일의 노래나 픽사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아닌 현실적인 노래와 공간을 앞세워 시청자 눈을 사로잡았다. 기존 경쟁자들이 써 내려온 이야기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적 추세를 창작에 자유롭게 반영한 것이다.
이 영화는 K팝의 성격도 재해석했다. 팬덤의 영향과 캐릭터들의 예술적 비전을 결합한 독창적인 노래로 그려내 폭넓은 관객층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강 감독은 "매 단계 스튜디오에 연출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며 "제작진 모두가 프로젝트를 믿었기 때문에 영화의 핵심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댄 린 넷플릭스 영화 부문 총괄은 "젊은 여성 관객과 K팝, 애니메이션 팬들의 관심은 예상했지만 더 넓은 연령층에게 사랑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어른들은 친구나 가족, 아이들은 형제자매와 함께 케데헌을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기는 시청률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했다. K팝 그룹들은 경쟁적으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부르거나 안무를 따라서 하고, 관련 상품은 인터넷 등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OST '골든'도 미국 빌보드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선두를 달린다.
폭발적인 관심 속에 시청자들은 속편을 기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아직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린 총괄은 "(주인공 그룹인) 헌트릭스의 다음 모험을 준비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도 "후속작을 만든다면 첫 번째 영화의 개성과 독창성을 지켜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 작업하고 싶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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