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치구 간 폭염저감시설 격차
시민들 건강권 차이로 이어질 수 있어
극한 폭염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서울 자치구별 폭염저감시설 설치 규모에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재난 대응 역량의 격차가 시민들의 건강권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아시아경제가 서울 25개 자치구의 무더위 그늘막 수(올해 8월 기준)와 자치구별 유동인구(올해 1분기 기준)를 토대로 유동인구 100만명당 그늘막 설치 수를 분석한 결과, 송파구가 3.35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천구(3.09개), 중구(3.01개), 광진구(2.95개), 서초구(2.82개), 용산구(2.67개) 등이 뒤를 이었다.
유동인구 100만명당 그늘막 수가 1개 미만인 자치구는 마포구(0.72개)가 유일했다. 1위와 꼴찌 자치구 간 격차가 4.65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마포구청 관계자는 "폭염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추가 설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무더위 그늘막은 폭염에 노출된 보행자에게 '길 위의 그늘' 역할을 하는 쉼터다. 주로 대형교차로 및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 인근 등 햇볕을 피할 공간이 부족한 보행 밀집 지역에 설치된다. 2015년 서초구가 '서리풀 원두막'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설치한 후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양천구 등 일부 자치구에서는 기온·풍속 센서를 장착한 스마트 그늘막도 도입해 자동 개폐 기능을 갖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김모씨(76)는 "횡단보도 앞에 그늘막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며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숨이 턱턱 막히는데, 그늘 하나만 있어도 훨씬 덜 힘들다"고 말했다.
쿨링포그도 자치구마다 설치 편차가 컸다. 쿨링포그는 여름철 고압 펌프를 통해 물을 미세하게 분사해 거리의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인 야외 냉방 시설로, 올해 8월 기준 서초구가 19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영등포 16개, 중구 15개 순이었다.
반면, 폭염에 취약한 65세 이상 고령층이 자치구 거주인구 중 25%로 높은 편인 강북구의 경우는 2개가 전부였다. 또 거주인구가 65만명으로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송파구에는 쿨링포그가 0개였다. 이에 대해 송파구청 관계자는 "얼굴에 수질이 확인되지 않은 물을 맞는 것이 싫다는 주민들 민원이 많이 들어와 설치했던 쿨링포그 시설을 제거했다"며 "추후 설치 계획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2021년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린 '도시 내 폭염 대응사업의 온도저감 효과 추정에 관한 연구'(양호진·이광진·배민기·이채연) 따르면 쿨링포그는 열쾌적지수(UTCI)를 한 단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기 중 미세한 수분 입자가 증발하면서 주변 열을 흡수하는 기화 냉각 효과가 발생해 사람들이 덜 덥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같은 자치구 간 폭염저감시설 격차는 예산 여건 및 우선순위 차이에서 비롯됐다. 폭염이 재난으로 자리 잡은 만큼 이에 대응하는 도시의 인프라 역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각 지자체는 기후 대응 예산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한편 중앙정부는 취약 자치구를 우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폭염이 재난이 된 시대이므로 폭염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나 시스템 또한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폭염저감시설 설치 위치는 효율성과 형평성을 기준으로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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