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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용두사미' 국정기획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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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용두사미' 국정기획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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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부처별 업무보고 자리.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 위원들은 부처 공무원들을 상대로 질문을 쏟아냈다. 국정위는 "다시 업무보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곁들이며 초반 기강을 잡았다. 이재명 정부 5년 청사진을 설계하는 '인수위 역할'을 자임하던 국정위의 존재감은 그때만 해도 무게감이 달랐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안 돼, 그 기세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지난 13일 열린 국정위 '국민보고대회'가 결정적이었다. 국정위는 이 자리에서 국가비전과 국정원칙을 공개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 그리고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라는 원칙은 문구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어려운 가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정위는 이를 뒷받침한다며 5대 국정목표, 23대 추진전략, 123대 국정과제, 564개 실천과제를 한꺼번에 발표했다.

목표와 과제의 '숫자 나열'은 웅장했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선순위와 현실성이 희미했다. 각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힌 정책들이 '모두 담기'식으로 끼워 넣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마치 전시회 벽면을 빽빽하게 채운 작품들처럼 수는 많지만 시선이 분산됐다. 더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국정위는 후반으로 갈수록 정보 통제에 사실상 실패했다.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대국민보고대회 발표 자료(PPT)와 세부 계획이 '확인되지 않은 경로'로 확산했다. 국정위는 "공식자료가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다음 날 확인 결과 해당 자료는 실제 공식 자료와 거의 동일했다. 사실상 거짓 해명에 가까운 해프닝이었다.


이런 혼선은 대회 당일에도 이어졌다. 당초 별도로 '7대 공약, 15대 추진과제'를 국정위에서 공개를 예고하고 실제 문건을 확인했으나, 이마저도 공식 문건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런 정보 혼란은 해당 부처 관계자들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당일 행사 진행 방식도 '일방통행'에 가까웠다. 질의응답 없이 1시간 남짓 발표를 마무리했다. 국민보고대회라는 이름과 달리, 국민은 들을 수만 있었고 묻거나 따질 기회는 없었다. 급박하게 짜인 일정이 원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준비 부족이 그대로 노출된 셈이다. 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조차 발언에서 "국정위의 기획안은 정부의 확정된 정책안이 아니다"며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지속적 소통을 약속했다. 국정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재원 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정위는 123대 국정과제를 실행하는 데 5년간 총 210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재원 조달 방안은 세입 확충 94조원, 지출 절감 116조원으로 나뉜다. 세입 확충에는 지난 정부 시절 감세 정책을 정상화하고, 비과세·감면 사업 등 정비하겠다는 세제개편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현실성은 물음표다. 국정위 계산대로라면 매년 세입을 19조원 늘리고 지출을 23조원 줄여야 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른 5년간 세수 증가액은 누적 기준 35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국정위 추산과의 차액만 무려 58조4000억원에 달하지만, 대책은 미정이다. '세입 확충'이라는 네 글자 뒤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증세 논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정부 조직개편 방향은 이날 공개 내용에서 아예 제외했다. 정권 초 '개혁 의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핵심 사안이지만 국정위는 숙제를 미뤘다. 국정위의 임무는 원래부터 단기 프로젝트다. 하지만 짧은 임기라는 이유로 완성도를 낮출 수는 없다. 정책 기획은 '시작이 반'인 게 아니다. 목표는 선명히 하고, 현실적인 실행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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