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고원자연휴양림 내에 건설 예정
6475억원 규모…예타신청후 내년 착공
부지 선정前 처분 시스템 안전성 검증
일부서는 태백 부지 적합성 문제 제기하기도
원자력환경공단 "해외서도 다양한 암종에서 R&D"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부지선정평가위원회에서 부지적합성평가 분과에 참여했던 권상훈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기자단에 시추 조사를 진행했던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희종 기자
지난 13일 찾은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고원자연휴양림. 차를 타고 방문객 숙박 시설인 '숲속의 집'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자 수풀로 덮인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위한 연구용 지하 연구시설(URL·Underground Research Lab) 후보 부지입니다. 이곳에서 4개의 시추공을 뚫어 지질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행했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재학 고준위사업본부장이 설명했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태백 고원자연휴양림에 2032년이면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이 들어선다. 국비 6475억원을 들여 지상 3만6000㎡, 지하 6만㎡ 규모의 거대한 연구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지상에는 연구동, 홍보관, 강당, 숙소 등이 건설되고 지하에는 심도 연구 모듈이 들어간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지난해 12월 태백시를 URL 부지로 최종 선정한 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조성돈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13일 태백 현지에서 기자단과 만나 "태백 URL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특별법 통과 이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고준위 방폐장) 건설의 첫발을 뗀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에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기 전 처분 시설의 지질 환경과 유사한 환경에서 처분 시스템의 안전성을 연구하고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고준위방폐장특별법(30조)에도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을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은 처분 시설과는 별도로 건설한다. 실제 사용후 핵연료를 반입하지 않고 방사성 물질과 비슷한 물질을 이용해 처분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일종의 임상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실제 고준위 방폐장 부지가 선정되면 처분시설 부지 내 지하연구시설을 지어 방사성 폐기물 처분 부지의 지질학적 특성 등 안전성을 연구한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을 일반 국민에게 개방하고 준위 방폐물 관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계획이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지난해 6월부터 공모, 유치 의향서 및 계획서 접수, 부지선정평가위원회 구성, 유치계획서 평가, 지질조사 결과 반영 평가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태백시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사업설명회에는 7개 광역 자치단체, 10개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했으나 실제 계획서를 접수한 것은 강원·태백 컨소시엄이 유일했다.
원자력환경공단은 태백시가 제출한 유치계획서를 우선 평가하고 이후 시추조사, 물리탐사 등 현장 부지조사를 거쳤다. 이후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해당 부지에 대해 만장일치로 '시설 건설이 적합'하다고 최종 심의·의결했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관계 기관 및 학회의 추천을 통해 원자력·지질·환경·행정·법률·시민사회 등의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됐다.
평가 결과는 105점 만점에 93.87점이었다. 원자력환경공단에 의하면 평가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됐던 것이 암종(암석의 종류) 적합성이었다. 전체 배점(105점) 중 25점(가점 3점)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치계획서 평가와 시추 결과를 종합한 최종 암종 적합성 평가 점수는 24.145점이었다.
주민수용성과 지자체 지원 의지 등 수용성 점수는 배점 20점중 19점을 받았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로 참여했던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태백시는 석탄광산 폐쇄 이후 지역 소멸 위기를 겪고 있어 지자체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의지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태백시청의 김학조 국가정책추진실장은 "태백 URL은 연구개발(R&D)까지 포함하면 1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입되고 3000억원의 경제효과, 8000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며 "태백시가 추진하는 청정메탄올 미래자원 클러스터, 삼림목재 클러스터 등과 함께 젊은 인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전날 기자단이 방문한 태백 부지 인근의 시추 코어(시추 장비에서 추출한 암석 표본) 보관소에서는 시추조사 당시 지하 깊은 곳에서 채취한 암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부지선정평가위원이었던 권상훈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하 480~700m 부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인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단단한 화강편마암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그 위쪽으로는 퇴적암과 화산암이 발견됐다.
태백이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부지로 선정되자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원자력학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대응 특별위원회는 처분고(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고 저장하는 장소) 상부 지층이 화강암이 아닌 퇴적암층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30년간 화강암반 처분 부지를 전제로 연구해왔기에 향후 영구 처분장 부지 인허가 과정에서 태백의 지하 연구시설 자료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상훈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 지질 구조상 상부부터 심부까지 균일하게 단일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곳을 찾기 어렵다"며 "향후 선정될 영구처분장과 유사한 지질구조를 찾는다면 오히려 태백 부지가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원자력환경공단의 김진하 URL추진팀장은 "일부에서는 퇴적암이 덮개암 역할을 하면서 방사성 핵종의 이동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이러한 부분도 향후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백 철암동 고원자연휴양림 부근에서 '연구 부지 심부 시추공 굴찾 및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대 1km까지 시추공을 뚫어 지질을 조사한다. 향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할 때 필요한 시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강희종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국내 기술기준에서는 처분고를 중심으로 단일 기반암인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상부 지층에 다양한 암종이 분포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해외 일본 미즈나미URL, 스위스 몬테리 연구시설, 스위스 처분 후보지 등은 상부에 다양한 암종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오는 9월 방사성폐기물특별법 시행과 내년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착공을 시작으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됐다. 정부는 특별법 시행과 함께 국무총리실 산하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조성돈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고방위 출범하면 공단은 지원조직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부지 적합성 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