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95% 중국행…"불황에 남아돌아"
국내 다운스트림 부진으로 에틸렌 공급 넘쳐
수출량 18% 오르는 동안 수출 금액 11%↑
국내 석유화학의 기초원료인 에틸렌 수출이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수준에 근접했다. 내수 부진과 다운스트림(중간재·완제품) 생산 저하로 국내에서 소화할 수 없는 물량을 저가에 밀어내기식으로 수출한 결과다. 특히 전체 수출 물량의 95%는 중국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석화산업이 경쟁력 약화로 휘청이는 반면, 중국은 에틸렌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헐값으로 수출하는 '불황형 수출' 패턴이 굳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6월 에틸렌 누적 수출은 98만623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3% 늘었다. 지난해는 업계가 최악의 침체기로 꼽았는데, 이때보다도 수출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이미 전년과 비교해 91.4% 폭증(82만9014t)한 바 있다. 특히 금액 기준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11.4% 늘어나는 데 그쳐 수출단가는 더욱 떨어졌음을 시사했다.
에틸렌 수출 물량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향했다. 올해 상반기 중국으로 간 물량은 93만2349t으로 전체 수출의 95.1%를 차지했다. 2023년(82.9%)과 2024년(84.3%)보다도 훨씬 높다. 물량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3% 늘었으며 금액은 30.8%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향 수출은 155만8787t으로 이미 역대 최대였는데 올해 그 기록도 경신이 유력하다.
에틸렌 수출이 늘어난 건 이를 원료로 하는 다운스트림 기업들의 생산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폴리에틸렌(PE), 에틸렌글리콜(EG), 스티렌모노머(SM) 등 범용 중간재 생산에 쓰인다. 하지만 다운스트림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가동률이 줄어들자 NCC 업체들까지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여천NCC·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LG화학 등 주요 나프타분해설비(NCC) 운영사 가동률은 70%대로 떨어졌지만 최근 평균이 80%대인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변동은 아니다. 생산을 완전히 멈출 경우 고정비 지출이 많아 울며 겨자먹기로 생산을 유지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BEP)을 하회한 지가 오래됐다"고 말했다. 에틸렌은 기체물질이기 때문에 수출 시 영하 104도 이하로 액화해야 하고 운송비 부담이 커 원거리 수출이 어렵다. 중국·일본 등 인근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내 석화업계는 '중국 편중+저가 수출' 패턴이 고착화될까 우려하고 있다. 밀어내기 수출이 반복되면 기업의 수익 악화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중국 기업 입장에선 저가 범용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팔릴 수 있다. 이는 국내 다운스트림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국내 에틸렌 소비처를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내수 부진→중국 저가 수출 확대→한국 다운스트림 감산→에틸렌 밀어내기'의 악순환이 가중된다는 뜻이다.
여천NCC가 최근 여수 제3공장 가동을 멈춰 실질적으로 연간 약 18만t 생산을 줄였지만 공급과잉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업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곧 발표할 '석유화학산업 재편 계획안'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기업에만 맡기면 언젠가 구조조정은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이 더 약화할 수 있다"며 "정부가 공정거래법·세제·금융·고용 전환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 수준이 불확실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 만큼 정부의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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