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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AI시대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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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구 성장 시기 공부방 역할
생활·학령 인구 변화로 기능 전환
개방형 문화 거점 공간으로 확대
AI시대 종이책 대체불가성 여전
성공적 도서관 모델의 새도전 기대

[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AI시대 공공도서관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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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들른 공공도서관 입구에 차가운 물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로드아일랜드주 정부, 공공도서관 기관, 그리고 지역 기업의 협력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삶 속으로 한층 깊이 들어온 공공도서관의 변화를 실감했다. 서울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2010년대 초반 대학교수 신분으로 서울에 살 때는 학교 도서관이나 집 근처 종로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특별한 자료가 필요하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2010년 중반을 전후해 서울 여기저기에 새로운 도서관이 많이 생겼는데 글마루한옥어린이도서관이나 청운문학도서관 같은 한옥 도서관이 궁금해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고, 옛 서울시청 건물을 활용한 서울도서관이나 주택 몇 채를 활용한 은평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도 다니곤 했다.

돌이켜보면 2010년대야말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서울의 모습을 만든 시대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서울은 이미 한류로 유명하긴 했지만 2010년대 케이팝 붐은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보급과 맞물려 서울의 풍경과 정보가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로 인한 소비 형태도 급속도로 다양해졌다.


서울은 어느 날 갑자기 도쿄와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문화적 영향력이 큰 도시로 급부상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얼핏 보면 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소비하는 젊은 세대가 변화의 주역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변화를 이끈 원동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산도서관 전경. 윤동주 기자

남산도서관 전경. 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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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대학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586세대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취미 생활의 수요가 높아졌다. 한편으로 이들 세대가 낳고 키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전 세대만 해도 도시에서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들은 도시를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고 심화하는 활동 무대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 급성장과 도시화가 맞물리던 1960년대 이후 서울 인구는 급증했고, 교육을 통해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던 세대의 학생들에게 공공도서관은 곧 공부방이었다. 집은 좁고 식구는 많다 보니 개인 공간을 갖기 어려운 많은 이들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은 학생들이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따분한 이미지가 훨씬 더 강했다.


1990년으로 접어들면서 서울의 인구는 증가세를 멈췄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으로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충격을 겪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생활 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에 따라 학생들은 이제 자신의 방이나 학원 등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무렵부터는 만18세 학령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생활방식과 인구 구조의 변화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변화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586세대까지 점차 도시를 활동의 무대로 여기면서 도시 속 공공 공간에 대한 기대가 사뭇 달라졌다. 2010년대 활발했던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다. 도시에서의 활동이 다양해지면서 취미 생활이나 교양 관련 모임, 강의, 강연 등을 위한 장소가 필요해졌다. 작은 행사라면 몰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행사라면 공공도서관 같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이로써 1990년대 후반 이후 '인터넷 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한때 한국 사회에서 관심 밖으로 밀리는 듯했던 도서관은 새로운 역할을 도맡게 됐다.


이를 기점으로 2010년대 다양한 형태의 공공도서관이 속속 문을 열었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주택가에 도서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2019년 개관한 배봉산근린공원 숲속도서관처럼 지역 주민과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도서관도 등장했다. 1999년 개관한 금천구립 독산도서관이나 1991년 개관한 동작도서관은 최근 멋있는 모습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처럼 오래된 도서관을 열린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곳들이 꽤 많아졌다.


2020년대 이후 몇 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문을 닫아걸면서 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이 뜸하기도 했지만, 사태가 진정된 뒤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올여름 서울 190개 공공도서관이 협력해서 진행하는 참여형 프로그램 '도서관은 쿨하다'는 그런 관심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는 어떨까. 2000년대 인터넷과 전자책이 급부상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결과는 딴판이다. 도서관 스스로 사회적 요구를 잘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책을 빌려주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여겨지던 도서관은 전자책 비중을 늘려가는 한편으로 다양한 취미와 교양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으로 변신했다. 도서관의 문화적 역할은 오히려 갈수록 더 커지고 있고, 이용자들의 기대는 높아져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과 확산은 정보 생산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종이책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이 어렵다. 이제는 종이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그 존재 가치에 물음표를 갖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 종이책이 아니면 책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많고, 수정이 거의 불가능한 기록의 수단이라는 특징 때문에 인공지능(AI)의 지배를 받지 않으니 대체 불가능한 장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종이책을 마음껏, 무상으로 볼 수 있게 제공하는 공공도서관의 가치가 더 빛을 발할 날이 오지 않을까.


문화적 거점의 전환으로 서울의 공공도서관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만큼 좋은 모델을 제시해 왔다. AI가 발전하면서 그 모델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과연 서울의 도서관은 이런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아가 세계 다른 도시로 어떤 파급 효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한편으로는 궁금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큰 기대를 갖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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