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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54년 자유무역질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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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54년 자유무역질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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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경제와 무역 질서를 바꾼 역사적 변곡점들은 공교롭게도 8월에 몰렸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금과 달러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한 태환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건 1971년 8월이었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전신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기반이 된 미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합의 시점은 1988년 8월이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7년 8월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IP) 침해를 공식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트럼프 집권 2기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인 제이미슨 그리어는 지난 7일(현지시간) 상호관세 발효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종식을 공식화했다. 1971년 8월 금태환제를 근간으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사라지면서 자유무역이 본격화됐다고 보면 국제경제를 이끌었던 자유로운 통상은 정확히 54년 만에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자유무역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통상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보호막도 사라지게 된다. 관세 장벽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불공정 무역 행위도 시정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무역분쟁 시 국제심판 역할을 해온 WTO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다. 1심인 패널 판정은 현재 유지되고 있지만 판정에 불복해 상소할 경우 항소심인 2심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분쟁 조정 역할을 하는 WTO 상소기구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간 자유무역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반론도 있으나 미국이 자신들이 만든 WTO를 버린 마당에 다른 국가들이 순순히 지킬 가능성은 회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재 WTO에는 다자간임시항소법원(MPIA)이라는 임시제도가 마련돼 있다. 회원국 가운데 원하는 국가끼리 항소하는 제도인데, 현재 57개국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는 가입하지 않아 혜택을 받긴 어렵다.


무역분쟁이 격화되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베트남,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이 20% 이상의 상호관세율을 통보받았다.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나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받은 15%보다 높다. 그동안 미국은 개도국에 '일반특혜관세제도(GSP)'를 적용해 관세를 매기지 않았는데, 2020년 제도를 중단한 이후 다시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약자에게 더 가혹한 셈이다.

미국 시장 접근 가능성이 낮아지면 저개발국가의 구매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개도국의 강점인 저렴한 노동력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기업들은 관세를 피해 시장이 가까운 쪽에 생산기지를 옮길 수밖에 없다. 관세장벽이 개도국 탈출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이런 변화에서 예외일 순 없다. 50년 이상 자유무역이 한국 경제를 키웠는데, 이제 와서 그 가치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세계질서가 변하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54년간 달러 패권을 얻는 대신 제조업을 잃었다. 그런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선언하고 다시 공장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우리로선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해 해외 사업장을 유턴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4년간 어떤 요구가 또다시 날아올지 모른다"고 했다. 불확실성만 확실해진 시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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