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한국계 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0대부터 인권운동
오바마 행정부서 정책 자문 위원도
한국계 최초로 미국 화폐의 주인공이 탄생한다.
지난 8일 미 조폐국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 쿼터(25센트) 동전을 연방준비은행과 각 주화 단말기로 배송해 오는 12일부터 유통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동전은 미 조폐국 '미국 여성 쿼터 프로그램'의 19번째 디자인이다. 조폐국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여성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념해 매년 5개 쿼터를 발행해왔다. 13일 미국 워싱턴 DC 국립 미국사 박물관의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는 새 쿼터의 주인공 밀번의 삶을 기리고 동전 발행을 축하하는 연방 조폐국의 축하 행사가 열린다. 행사장에는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부채춤 공연이 열린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반짝이는 새 동전 2000개를 쏟아붓는데 한국식 팔각쟁반에 담게 된다.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이었던 밀번의 삶을 기리기 위함이다.
스테이시 박 밀번 쿼터의 앞면에는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얼굴이, 뒷면에는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채 전동 휠체어에 앉아 연설하는 밀번의 모습이 새겨졌다. 밀번의 동전은 최소 3억개, 많을 경우 7억개까지 발행할 예정이다. 1970년대 발행한 쿼터가 현재까지 통용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 50년 동안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밀번의 얼굴이 자리할 수 있는 셈이다.
밀번은 1987년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조엘 밀번과 어머니 진 밀번의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밀번은 태어날 때부터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았지만,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부모님의 격려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낙상 사고를 계기로 자신의 몸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인지했다. 이후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은 불편함과 부당함, 개선점 등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글들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주목받았다.
2007년 스무살 밀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가 공립 고교 교육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는 메소디스트 대학과 밀스칼리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장애인·유색 인종·성 소수자 등을 위한 인권 운동에 힘썼고, 그 덕에 2014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서 지적장애인을 위한 정책 자문 위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밀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스크 등 긴급 의약품·위생용품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다 앓고 있던 신장암 등이 악화했다. 그는 결국 33번째 생일인 그해 5월 19일 사망했다.
한편 올해 쿼터 디자인에는 밀번 외에도 언론인이자 시민운동가 아이다 웰스(1862~1931), 걸스카우트 창립자 줄리엣 고든 로(1860~1927), 천체 물리학자 베라 루빈(1928~2016), 테니스선수 알테어 깁슨(1927~2003) 등이 선정됐다.
구나리 기자 forsythia2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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