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정책 개선 위한 고용부 행정지도
이스타·에어부산, 인사평가 '휴가' 반영
연차에도 진단서 요구하는 국내 항공사
정부가 항공사 객실승무원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휴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일부 항공사는 승무원이 '아프다'는 사유로 휴가를 쓰면 벌점을 매기고, 병가가 아닌 연차를 소진함에도 진단서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연차를 쓰려면 휴가일 40일 전에 신청하도록 한 항공사도 있었다.
11일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객실승무원이 비행 스케줄 확정 이후 질병·부상 등으로 직무수행이 불가할 경우 이를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비행 스케줄은 대체로 한 달 전에 정해지는데 그사이 의도치 않게 근무가 불가능하게 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업무 중 부상, 건강검진 및 검진 결과에 따른 시술, 2급 이상 전염병에 따른 휴가는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
에어부산의 경우 객실승무원이 업무 당일 병가·연차를 사용하면 근무 평가에 반영한다. 다만 휴가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된다면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
또 국내 항공사들은 객실승무원이 질병·부상 등을 사유로 병가를 신청하면 연차를 우선 소진하면서도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가가 아니라 유급휴가인 연차로 처리됐음에도 진단서·진료확인서 등 병원 방문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하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여러 승무원이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연차를 사용할 경우 항공기 운항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고객과의 약속된 운항 스케줄 준수 및 스케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승무원의 비행 근무 스케줄 이행 척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객실승무원들은 이 같은 휴가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반박한다. 익명을 요구한 승무원은 "불규칙한 근무와 시차 변화 등으로 노동강도가 세 항상 건강할 수만은 없다"며 "기계가 아닌 이상 언제 아플지 미리 알 수 없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벌점까지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이미 연차가 사용된 상황이라면 병원에 다녀왔는지 여부는 사적인 영역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고용부는 항공업계 불합리한 휴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지도를 이어갈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병가 사용으로 인사 평정에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며 "노사가 '병가 사용 시 연차 우선 소진'에 합의했지만, 연차 사용에 진단서 같은 증빙서류를 내도록 한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에 이스타항공은 "인사평가에 휴가 사용이 반영되지 않도록 제도 변경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 주 안에 바뀐 정책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행정지도를 받은 에어부산은 지난달부터 연차 신청 기한을 '40일 전'에서 '1일 전'으로 완화했다. 자유로운 휴가 사용 여건을 조성할 수 있도록 객실승무원 채용계획(82명 예정)도 세웠다.
고용부 산하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에어부산에 보낸 '연차 유급휴가 사용 관련 행정지도'에서 "연차 유급휴가 청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다"며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법 위반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무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고 했다.
김 의원은 "아픈 항공업 종사자에게 사실상 페널티를 부과해 건강권과 휴식권을 위협하는 관행은 심각한 문제"라며 "현장에서는 여전히 '아파도 못 쉬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은 정치의 책무"라며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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