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 활성화 논의 지속
IPO 중심 회수구조서 대규모 자금투입
회수 다양화 없으면 개미 등에 짐넘기기 될수도
"솔직히 말하면 개미들이 마냥 짐을 떠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최근 만난 국내 한 벤처캐피털(VC) 대표가 한 말이다.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속속 도입되는 각종 제도와 지원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개인투자자가 투자금 엑시트(회수) 시장의 최종 부담자가 될 수 있다'는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2021년 정점 이후 계속 혹한기를 겪은 벤처투자 시장은 올해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상장형 벤처투자펀드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이 기정사실화됐고,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정부 모태펀드 예산도 연간 40조원 규모로 확대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인공지능(AI)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하면서 관련 대규모 투자 공약도 실행에 옮겼다.
출자기관, 금융권, 정책자금 모두 벤처 생태계로의 자금 유입을 예고하는 분위기다. 7월 한 달간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약 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월평균 투자액인 4400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AI, 로보틱스, 의료기기 외에도 한동안 투자가 막혔던 게임, 농업 등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문제는 투자 이후의 회수다. 한국의 벤처투자 시장은 기업공개(IPO) 의존도가 높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VC 회수 유형 중 인수합병(M&A)과 바이아웃, 구주 매입 등을 포함한 '매각' 비중은 54.4%였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그 비중이 37.9%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반면 IPO는 46.7%로 늘어나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해외는 다르다. 미국은 IPO 외에도 M&A, 세컨더리(구주 매각) 펀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자본재조정(리캡) 등 다양한 회수 전략이 발달해 있다. 글로벌 데이터 전문 회사인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미국 VC 회수 구조는 M&A가 44.1%로 가장 높았고, 세컨더리가 29.2%를 차지했다. IPO는 27.7%에 그쳤다.
IPO 중심의 회수 구조에선, 투자금 회수의 부담을 상장 직후 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떠안을 수 있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고평가 논란이 불거지고, 기관투자가의 록업(보호예수) 해제 이후 대량 매도가 이어지는 일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이미 익숙한 장면이다. 회수 전략의 다변화 없이 자본만 밀어 넣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자금 투입과 함께 다중 회수 구조를 촘촘히 갖춰야 한다. 일반투자자 보호 장치를 수반한 BDC 도입 등으로 자본조달의 유연성을 높이고 위험가중자산(RWA) 완화 등으로 금융권의 벤처투자 장벽을 낮춰야 한다. 또 상장 직전 단계의 성장 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그로스 사모펀드와 채권이면서 주식 전환권을 가진 메자닌 시장을 활성화하면, IPO 전에도 투자자 환금이 가능해진다. 자본시장의 건전성은 '들어오는 돈'만이 아니라 '들어온 돈이 돌아가는 구조'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점을 직시하자.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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