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해보라는데, 아빠는 안 된대요."
육아에서 아이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기준이 하나가 아닐 때다.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 헷갈리면 눈치부터 보게 된다. 이런 혼란이 반복되면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피하는 법부터 익힌다. 지금 시장이 그렇다. 정부가 기업들의 판단을 어렵게 하고 눈치를 보게 만든다.
고금리와 관세 압박, 글로벌 수요 위축 속에서 정부는 기업과 해법을 찾고 있다. 대미 관세 협상을 앞두고 주요 그룹 총수들이 대통령과 연이어 면담했다. 그러나 곧이어 발표된 세법 개정안은 정반대의 신호를 보냈다. 법인세율과 증권거래세 인상, 대주주 기준 강화, 배당소득세 최고세율 신설 같은 조치가 이어지자 기업들은 재무 구조 재설계를 검토하고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규제 혁신을 예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에선 여당 주도로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상정됐다. 여기에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까지 병행 추진되면서 현장에선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고 규제 강도 또한 과도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가장 난감해하는 건 매달 쏟아지는 정책의 취지보다 그것이 주는 방향의 혼선이다. 많은 기업은 6~7월이면 다음해 사업계획 윤곽을 잡고 하계휴가 전 사장단 회의를 통해 큰 틀을 정한다. 그러나 올해는 8월이 됐는데도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기업이 적지 않다. 기대감을 키울 발표가 나오면 곧이어 정반대 조치가 이어지면서, 명확한 계획 대신 임시 대응만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정책마다 타당한 명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세제 개편은 세수 확충과 과세 형평성을 위한 것이고, 지배구조·노동 규제 개편도 오랜 논의 끝에 나온 사안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내용보다 시점과 맥락이다. 위기 산업을 살리겠다던 직후 세금과 규제를 강화하면 시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생존 본능으로 움직이는 기업과 자본시장은 정부의 명분보다 정책이 보내는 신호를 읽는 데 익숙하다.
실용주의는 이 정부의 중요한 기조로 자리 잡았다. 이념보다 현실을, 대의보다 현장을 중시하겠다는 태도는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는 평가는 유연성이라는 점에서 강점이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작동하려면 정책이 맞물리면서도 일관되고 시의적절하게 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각 정책이 제각기 논리만 내세운 채 동시다발로 추진되면 실용은 쓸모가 아니라 충돌이 된다.
시티은행은 한국 주식 비중을 '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추며 세제 개편안이 기업가치 개선 목표와 충돌한다고 분석했다. 홍콩계 CLSA는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며 세제·규제 정책이 모두 시장 유인을 떨어뜨린다고 평가했다. JP모건도 "추가 상승을 이끌 동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정권 초반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대외 환경이 험난한데 국내 정책마저 방향을 잃으면 기업은 기댈 곳이 없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의 태도는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체 산업 구조와 경제 흐름을 읽는 통찰도 필요하다. 현장의 고통에 즉각 반응하는 리더, 그것이 이재명이다. 그러나 이를 보듬으며 미래 전략까지 세우려면 세밀함과 통찰, 시기의 정밀함이 뒷받침돼야 한다.
박소연 산업IT부 차장 muse@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