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등장인물들…욕망의 근원은 경제개발
'이도향촌'에 '이촌향도' 하층민 절박함 담겨
새마을 운동에 따른 공동체 약화로 파국 불가피
디즈니+ '파인'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열하고 간악하다. 주인공 오관석(류승룡)과 오희동(양세종)부터 자잘한 사기와 도둑질로 생계를 잇는 범죄자다. 이들은 골동품점 사장 송기택(김종수)에게서 신안 앞바다에 잠든 도자기를 건져 큰돈을 벌자는 제안을 받는다. 가져만 오면 몽땅 사주겠다는 흥백산업 회장 천황식(장광)을 믿고 신안으로 향한다.
도굴은 시작부터 삐걱댄다. 천 회장이 보낸 임전출(김성오)과 송기택의 심복 나대식(이상진)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의도치 않게 합류한 목포의 건달 장벌구(정윤호)와 부산의 도굴꾼 김교수(김의성)도 호시탐탐 도자기를 가로채려 한다. 천 회장의 아내 양정숙(임수정) 역시 이들을 이용하려 든다.
강윤성 감독은 이들이 품은 욕망의 뿌리를 1970년대 한국 사회의 화두였던 '근대화'에서 찾는다.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좌절된 욕망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국가 프로젝트로 가시화됐다. 근대화와 발전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모든 이들의 욕망을 하나로 수렴시켰다. 특히 산업화는 경제를 특권화하며 '경제적 욕망의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등이 집필한 '1970 박정희 모더니즘 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근대 사회가 신분제적 격벽과 토지긴박(土地緊縛)을 통해 '안정'에 치중했기에 '안분지족'과 '금욕'을 강조했다면, 근대 사회는 만인 평등의 자연 상태를 가정하고 능력별 위계 서열화를 내세웠기에 욕망 경쟁을 통한 사회적 유동성을 강조했다. 이는 곧 수직적 승강 운동이 새로운 원리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파인에서 이러한 욕망의 구도를 상징하는 인물은 양정숙이다. 남편 임전출의 소식이 끊기자 곧바로 천 회장과 결혼한다. 겉으로는 수발을 들지만, 속으로는 흥백산업의 실권을 노린다.
도굴꾼들의 여정도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흥미롭게도 이 흐름은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가 아닌, 시골로 향하는 '이도향촌'이다. 1970년대 농촌에는 새마을 운동이 있었지만, 농민들은 도시에서의 기회를 좇아 대거 이주했다. 국가의 선전, 방송과 언론의 호들갑보다 자기들이 느끼는 삶의 육감을 더 신뢰했다.
그러나 모두가 양정숙처럼 신분 상승을 이룰 수는 없었다. 대부분 기대했던 도시 생활과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했다. 학력, 기술, 인맥 등의 부족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금전 등의 문제로 달동네나 판자촌을 전전했다. 농촌에선 적어도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이 가능했으나 도시에선 달랐다. 현금 중심의 경제 체제라서 수입이 끊기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았다.
오관석을 비롯한 도굴꾼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변변한 직업을 찾지 못해 도시 하층민으로 고착화하거나 범죄의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이들 사이에서 의리나 인간미는 볼 수 없다. 새마을 운동이 표방한 공동체가 오히려 성과주의와 경쟁으로 약화하면서 개인의 생존 경쟁이 일상화됐다. 결국 파인(巴人·촌사람)들 역시 공동체 해체의 시대에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빈자리는 이기심으로 채워질 테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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