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조명·배경·구도 어떤 것도 선택 못해
특검의 연출 따라야 하는 시간
사진의 언어 아닌 실체적 진실 밝혀야
김건희 여사가 6일 오전 10시11분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 특검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목걸이는 왜 받으셨습니까" "주가조작은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플래시 불빛이 터지고 북새통을 이룬 기자들이 그를 따라붙었다. 침묵, 숨소리, 얼굴 근육 움직임까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이쪽으로 돌아주세요"라는 사진기자의 고성이 터졌다. 헌정사상 최초의 전 영부인 소환을 넘어, 이미지로 권력을 행사해온 인물이 이미지로 단죄되는 아이러니한 순간이기도 했다.
김 여사는 사진을 통해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대통령실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여사의 인스타그램'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김 여사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공적 발언보다 패션과 동선, 외모가 주목받았다. 외교 현장에서도 그의 옷, 화장, 장신구 등 스타일이 화제가 됐다. 말보다 구도가, 내용보다 연출된 형식이 더 중요했다. 이미지로 권력을 구성해온 셈이다.
2022년 캄보디아 방문 당시 김 여사가 한 아이를 무릎에 앉힌 장면이 대표적이다. 자비를 상징하려던 장면은 오히려 인위적 연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빈곤 포르노' '오드리 헵번을 흉내 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천 장의 사진을 찍고 김 여사가 선택한 사진을 공식계정에 올린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김 여사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강력한 언어였다.
오늘 포토라인은 달랐다. 각도, 조명, 구도, 배경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김 여사는 강제조사를 받으러 나온 '피의자'인 피사체였다. 질문은 통제를 벗어났으며 셔터는 무작위로 터졌다. 선택할 수 없는 이미지는 권력자에게 위협이다.
이날 장면을 기획하고 연출한 것은 특별검사팀이다. '포토라인 앞에 선 전 대통령 부인'이라는 장면은 강한 상징성이 있다. 대통령 배우자를 피의자로 세우는 장면은 수사 성과를 입증하지 않아도 수사의 완결성을 부여한다. 설득력은 사진에서 나온다.
그러나 장면이 곧 정의의 구현으로 보기에는 이르다. 김 여사를 둘러싼 삼부토건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코바나 콘텐츠 협찬, 명태균씨 공천개입, 건진법사 청탁 뇌물 수수 등 다수의 의혹이 김 여사로 향하는 고리는 특검이 명료한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삼부토건' 외에도 김 여사를 구속할 만한 혐의를 분명하게 찾아내야 한다. 포토라인 출석 자체가 확정판결이나 유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실체적 진실은 아직 가려져 있다.
결국 오늘 도배될 것은 텍스트나 진실이 아니라 장면, '그럴듯한 사진'이 될 것이다. 이 장면이 정의의 한 장면이 될지, 또 다른 연출의 일부로 남을지는 특검이 공명정대한 수사를 통해 결정지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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