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투자자, 벤처투자 쉬워져…주식처럼 매매 가능
스타트업, 시리즈 B~C단계 '투자 절벽' 넘는데 도움
자본시장 다양성 확대 '신성장 엔진' 기반 마련
美BDC는 대출형, 英VCT는 지분형…한국형 설계 관건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숙원사업이던 BDC가 연내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비상장 벤처기업들 사이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유망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던 일반 투자자들도 새로운 투자 기회를 얻게 돼, 혁신기업과 자본시장 간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투자자·스타트업·자본시장 모두에 도움되는 BDC
BDC 도입 시 우선 기대되는 효과는 스타트업·벤처 업계에 대한 적극적인 민간 자금 유입이다. 인공지능(AI)·바이오 등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은 산업 특성상 성장단계마다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펀드당 기껏 수백억 원 규모를 운용하는 국내 벤처캐피털(VC)은 체급 한계상 개별 투자 규모가 10억~20억원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일반 사모펀드(PEF)가 VC보다 규모가 크지만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 기관투자가나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안정적인 자금 회수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BDC는 스타트업·벤처 기업이 초기(시드·프리A)와 후기(프리IPO·유니콘) 단계 사이의 '투자 절벽'을 넘는 데 실질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내 500개가 넘는 액셀러레이터(AC)와 VC 상당수는 주로 정책 자금을 받아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PEF들은 대부분 프리IPO나 유니콘 기업 위주 투자를 해 왔다. 일부 대규모 펀드를 운용하는 대형 VC 위주로 시리즈 B·C 투자에 적극적이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필요자금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를 받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BDC 도입으로 시리즈 B·C 투자 공백을 메울 장기자금 창구가 열리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BDC는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주식시장에 상장되며, 자산의 절반 이상을 벤처·비상장 기업에 투자한다. 투자자는 증권계좌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펀드 지분을 주식이나 ETF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 환금성이 뛰어나다. 그동안 개미 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투자가 쉽지 않았다. VC·PEF는 고액 자산가들만 접근 가능했고, 스타트업 투자는 제도권 밖의 개인 간 거래 사이트나 비상장 거래 플랫폼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BDC 운용 주체로 자산운용사, VC, 증권사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요소다. 투자 전략이나 산업 선호도가 다른 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벤처투자에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자산운용상품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기존 벤처펀드 중심의 폐쇄적 구조도 일부 완화될 것이란 기대다. 퇴직연금의 벤처 투자 허용, 연기금 및 연기금투자풀 벤처 투자 확대 등 일반 국민 자산의 벤처 간접투자 확대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투자 선택지를 늘린다는 효과도 있다.
BDC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벤처·혁신기업은 미래 산업을 선도할 주체인데, 고금리와 불확실한 경제 여건으로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모험자본 공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을 가동할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BDC와 영국 VCT, 장기 벤처자금 공급원 역할
미국과 유럽에선 BDC가 이미 제도화돼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선 1980년 처음 도입된 뒤 비상장기업 투자와 중소기업 대출의 핵심 채널로 성장해 왔다. 직접대출(Direct Lending) 형태로 운영되면서 고금리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다. 미국 BDC는 모집 자금의 70% 이상을 비상장·중소기업에 투자하고, 수익의 90% 이상을 배당하면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변동금리부 대출 기반으로 운용돼 금리 상승기에도 수익 안정성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공모 BDC인 아레스캐피털, FS KKR, 오울록, 블랙스톤 등은 10% 안팎의 배당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VCT(Venture Capital Trust)도 국내 BDC 제도 마련 과정에서 참조한 모델이다.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폐쇄형 펀드 구조의 VCT는 비상장 중소·혁신기업에 지분투자를 집중한다. 투자자들에게 소득공제, 배당소득 비과세 등 다양한 세제 혜택도 제공된다. 미국 BDC가 대출 기반이라면, VCT는 지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외 유럽연합(EU) 대부분의 국가는 ETIF(European Long Term Investment Fund)를 통해 장기자금 공급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BDC의 경우 아직 투자 비율과 운용 주체, 모집 요건 등 핵심운영 지침이 구체화하지 않은 만큼, 한국 자본시장 상황에 맞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한 중견 VC 대표는 "스타트업 성장 가능성과 투자사의 회수 기회가 커지는 만큼, 업계에서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일반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투자 기회를 얻는 것"이라며 "실제 도입되기 전까지 세부 내용을 정교화해서 벤처투자 시장 전체의 신뢰를 쌓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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