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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트럼프의 '관세 쇼', 국격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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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관세 깎아주는 거래' 묘사
美, 글로벌 신뢰 무너뜨리고 있어

[시시비비]트럼프의 '관세 쇼', 국격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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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國格)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의 품격'이다. 즉, 국가의 품격이나 위신을 의미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국민 개개인의 인격이 합쳐져 형성된 국가의 총량을 상징한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과 국제적 위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일본과 EU에 이어 최대 관심사였던 한국과의 관세 협상도 당초 예고됐던 적용 시한(8월1일)을 하루 앞두고 마침내 타결됐다. 갑작스레 국격이란 말이 떠오른 건 최근의 이른바 '트럼프 관세 쇼'를 관람하면서부터다. 마치 TV에서 홈쇼핑을 보는 시청자가 된 느낌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가격 흥정을 기본으로 삼으며, 상대방이 '간절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본인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번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의 외교, 경제, 통상 등 각 분야 고위급 회담을 일정 변경을 이유로 갑작스레 취소해 나흘을 기다리고도 얼굴 한 번 못 보게 한다든가, 심지어 공항에서 되돌아가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러더니 마감 이틀 전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관세 인하 제안을 가지고 왔다"며 "나는 그 제안이 무엇인지 듣는 데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의 이 짧은 문장은 경고였다. 마치 '제대로 된' 제안이 아니면 관세 폭탄을 맞을 거라고 위협하듯이 말이다.


앞서 일본과의 관세 협상을 돌이켜보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해 "일본은 우리에게 5500억달러(약 757조원)를 선불로 줬고, 난 이것을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이닝 보너스는 계약서에 사인하면 주는 보너스, 즉 어떤 단체나 기업이 새로 합류하는 직원에게 주는 일회성 인센티브이자 일종의 계약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국가 간 경제협상에 빗대는 것은 국제정치를 희화화하는 행위일 뿐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다른 나라도 일본처럼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면 관세를 낮춰줄 수 있다(buy it down)"는 충격 발언을 했다. 한 나라의 외교 정책이 마치 개인 간 거래나 사적인 '딜'처럼 다뤄지는 모습이었다.


동맹은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반 위에 성립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무역 협상을 '돈 받고 관세를 깎아주는 거래'로 묘사했다. 동맹국을 우방이 아닌, 흥정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외교적 신뢰가 훼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제안서에 쓰인 숫자를 펜으로 밑줄을 그어 지우고 직접 고쳐 쓰기도 했다. 이후에는 그 사진을 버젓이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얼마나 상대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는 행위란 말인가.


미국은 그동안 단순한 강대국이 아닌, 세계 질서를 설계하고 수호하는 위치에 있었다. 할리우드산 슈퍼 히어로 영화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의 평화 체제)' 사고방식이 밑바탕에 있다. 미국이 과거 냉전 시대 이후 세계 경찰 역할을 수행하며 국제 질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 암묵적 동의가 있기에 이 같은 영화의 글로벌 흥행도 가능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무역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국내 소비자나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특정 분야의 일자리 몇 개만이라도 되살리겠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결국 우방국을 소외시키고 잠재적 동맹국들을 잃게 되는 매우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국제 사회는 '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신뢰, 원칙, 협상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질서가 구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은 당장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동안 미국이 쌓아왔던 글로벌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역사다. 이번 일은 언젠가 미국의 국격 이탈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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