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관세협상 타결에도 긴장감
최혜국 대우 보장해도 '관세 신설' 부담
CSA 연계 등 현지 투자 압박 계속될 듯
삼성·SK하이닉스, 美 투자 확대 불가피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반도체 품목관세'에서도 최혜국 대우(MFN)를 받기로 했지만, 업계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당장 단기적인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고려한 중장기적 관점에선 현지 투자 압박,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지속될 거란 분석이 나온다.
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향후 미국의 품목별 관세 책정에서 한국이 최혜국 대우를 적용받을 거란 정부 발표 이후로도, 주요 기업들은 구체적인 세율과 적용 조건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 '기존에 없던' 관세가 신설되는 셈"이라며 "단순한 세율보다 공급망 구조나 원산지 규정 등 여러 변수들이 얽혀 있어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은 미·중 패권 경쟁과 미국의 현지 산업 재편 전략 등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단순히 무역수지 조정을 위한 일회성 이슈로 끝날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우리 수출 기업들을 압박하는 정책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가장 현실적인 우려로 떠오른 건 '현지 투자 압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생산 및 투자 확대를 관세 감면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관세는 어느 정도 리스크 관리가 되겠지만, 반도체지원법(CSA) 등을 연계한 투자 압박이 계속될 거라 보고 있다"며 "현지 투자를 확대하지 않으면 기술 경쟁력을 갖췄어도 미국 시장에서 장벽에 부딪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회 수출도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혹은 후속 기술로 평가되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D램 등은 구조적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칩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 경로상 미국향 반도체는 대부분 대만·멕시코 등 제3국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기업들이 직접 관세를 부담하기보단 최종 고객사인 미국 시장에 전가되는 구조다. 관세로 인한 당장의 타격은 적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HBM의 경우 대부분 대만을 거쳐 멕시코를 통해 우회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한다"며 "반도체 관세를 높이면 부품·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고, 결국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봐도 중간선거에 타격을 입게 되니 (반도체 관세 부과는) 정치적 실익도 낮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원산지 규정 강화 움직임' 등 지정학적 변수로 이 같은 우회 구조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우려 요인이다. 일례로 중국은 최근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으면서 수입 반도체 원산지를 패키징 공장이 아닌 웨이퍼(원판) 제조국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으로의 고성능 칩 유입을 막기 위해 원산지 규정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억지 관세' 책정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부담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추가 투자를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실적이 보장되지 않으면 녹록지 않다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테슬라로부터 수주한 차세대 자율주행용 인공지능(AI) 칩 'AI6'를 내년부터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테일러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 설비투자(CAPEX)를 확대할 여력이 생긴다. 삼성전자는 전날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8월 중순 발표가 예상되는 반도체 및 파생 상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올해 공장 투자는 기존의 캐펙스 내에서 집행하고, 내년 미국 테일러 공장 가동에 대비해 캐펙스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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