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단지 경비원 "매일매일 감시당하는 기분"
대단지 경비원 "분리수거, 민원 넘쳐나"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서울 성동구 1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이곳에서 4년 가까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씨(75)는 장갑을 낀 채 분리수거장에서 쓰레기를 분류하다가도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혹시라도 입주민이 지켜볼까 불안해서다. 이씨는 "지나가는 입주민들이 단지를 오가며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볼 때가 많다"며 "일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이 나를 보는 순간 '쉬는 것 같고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것 같다'고 오해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1300여가구 아파트에서 5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 박모씨(77)는 박스, 유리, 페트병 등을 구분하다 보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다. 대단지인 만큼 매 순간 쓰레기가 쏟아져 분리수거와의 전쟁을 치른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잠시 경비실에 앉아 있다가도 혹시 모를 생각에 이내 곧바로 일어나 다시 분리수거장을 확인하는 일도 많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매주 두 번씩 오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노동 다른 고충
두 경비원은 같은 시간을 일하고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박씨와 이씨 모두 격일로 출근하며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한다. 월급은 240여만원 수준이다. 기본 업무는 순찰, 청소나 분리수거 등 단지 관리, 입주민 민원 해결이다.
이날 이씨는 분리수거를 마치고도 계속해서 주변을 의식하는 모습이었다. 기자가 말을 걸면 경비실 뒤쪽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만 대답할 정도였다. 이씨는 "단지가 작다 보니 경비실도, 정문도 하나뿐이라서 경비원이 주민들의 눈에 잘 띈다"며 "지나가는 입주민뿐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 업무도 중요하지만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눈치싸움"이라며 "한 달에 한 번 입주자대표 회의에서 안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다. 이 단지에서는 이씨 포함 총 2명의 경비원이 교대로 일하다 보니 부재 시 대체할 인력이 없다. 이씨는 "휴가가 아예 없다 보니 명절 때 가족들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다"며 "아무래도 작은 아파트다 보니 내가 빠지면 대신 일할 사람이 없다"고 털어놨다.
박씨의 고충도 이씨 못지않다. 대단지인 만큼 같은 시간대에 5명의 경비원이 근무하며 연 5일의 휴가를 쓸 수 있지만, 처리해야 할 민원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씨가 혼자서 100여가구의 민원을 처리한다면 박씨는 두배 이상인 260여가구의 민원을 들어줘야 한다. 엘리베이터 고장 신고부터 세면대를 고쳐 달라는 민원까지 단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박씨에게 전달된다. 실제로 경비실에 전화 알림음이 울리자 박씨는 다급하게 달려가 전화를 받는 모습이었다.
늦은 밤에는 주취자와의 씨름을 이어간다. 새벽에 술에 취해 단지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입주민이 있을 때는 자다가도 눈을 떠서 주취자를 달랜다. 그는 "술 취한 입주자가 오면 소리치는 것뿐 아니라 집에 안 들어가고 길에서 잠드는 일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을 챙겨서 집으로 보내려고 하면 욕설을 내뱉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많이 사는 만큼 층간소음, 이상한 사람 신고, 주취자 등 많은 민원이 제기되니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새벽에도 거의 잠을 못 잔다"고 전했다.
24시간 일하는 경비원이지만 쉬는 시간은 사실상 없다. 이씨는 혼자서 근무하기 때문에 정해진 쉬는 시간조차 없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간단히 식사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휴식이지만, 단지 입구의 차량 출입 차단기를 보며 들어오는 차량이 바로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차단기를 늦게 올리는 순간 일부 입주민은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박씨에게는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일은 없다. 박씨의 명목상 쉬는 시간은 오전 9시~9시30분, 정오~오후 2시, 오후 5시~6시지만 시간을 가리지 않는 민원 전화로 인해 쉴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전화 연결음이 들리는 순간 뛰어가서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도 이들은 웃음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입주민 사이에서 '불친절하다'는 말이 돌면 해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렇게 이씨는 현재 근무 중인 아파트에서만 3명이, 박씨는 10명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지켜봤다.
"입주민 개인의 의식 개선 필요"
고령의 경비원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60대 이상 경비원은 2020년 8만8995명에서 지난해 12만1962명까지 늘었다. 이들의 평균 월급은 245만원으로 국민연금 등을 포함한 노인 평균 월 소득 180만원(2023년 기준)보다 60만원 이상 많다.
이 때문에 경비원 취업 시장에 노인들의 발길이 쏠리고 있다. 대부분 경비 인력사무소에 구직 등록을 한 뒤, 자리가 난 아파트 등에 지원하면 면접을 통해 채용된다. 서울 중구의 한 경비 인력사무소 직원은 "갈수록 노인들의 지원이 많아지고 있어 면접에서 여러 차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사무소에 구직 등록을 해도 3개월 이상 경비원이 되지 못한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경비원은 여전히 각종 갑질 등에 시달리는 직업으로, 이들 업무의 질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인 노동 현실을 보여준다"며 "주로 갑질을 하는 대상은 입주자대표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먼저 경비원에게 필요 이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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