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제도 연계 개혁
재시공 막으려면 품질부터 잡아야
연차보다 실력 중심 등급제로
현장서 외면받는 기능등급제
숙련도·품질·임금 연계 개혁 절실
불법 체류자 고용이 내국인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현장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외국인 고용 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내국인이 다시 건설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산업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숙련공을 우대하고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내국인 고용 확대는 물론 기업 채산성 확대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용학 한국건축시공기능장협회장은 "공사비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시공으로 인한 추가 지출이 주요 원인인 경우가 많다"며 "처음부터 제대로 시공하면 원자재를 불필요하게 더 쓰는 일이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1일 말했다. 대부분 주요 자재는 공사 시작 전 미리 계약을 맺기 때문에 시세 변동이 전체 공사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작업이 잘못돼 재시공하게 되면 자재를 다시 넣고 인건비도 두 번 들면서 비용이 증가하고 채산성은 크게 떨어진다. 이는 결국 건설사 적자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숙련공 양성과 적정임금 보장, 품질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 분야는 불안정한 고용과 다단계 하도급, 빈번한 인력 이동 등 특수한 성격으로 인해 일반 노동법으로는 관리가 어렵다. 그래서 1998년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고용개선, 복지, 퇴직공제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숙련공·임금·품질 연계한 3단계 개혁 필요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건설 기능등급제-단위작업 실명제-적정 임금제로 이어지는 3단계 연계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기능등급제를 통해 근로자 숙련도를 평가하고 단위작업 실명제로 누가 어떤 공정을 맡았는지 이력을 축적하면,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력에 맞는 적정임금을 책정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기능인 등급제만으로는 실제 작업 품질을 파악하기 어렵고 실명제만으로는 임금 연계가 이뤄지지 않지만, 세 가지가 연결되면 '실력 있는 사람이 제값을 받는' 투명한 현장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제도적 연계는 공사비 통제와 채산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공 품질이 안정되면 하자율과 재시공 가능성이 작아지고, 이에 따른 자재·노무비 재투입이 줄어 비용이 절감된다.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유능 인력 유입 확대→품질 개선→재시공 감소→ 공사비 절감이라는 선순환도 가능해진다.
먼저 현행 등급제를 업무 숙련도에 따라 운영할 필요가 있다. 현행 등급제는 경력 연수에 따라 초급, 중급(3년 이상), 고급(9년 이상), 특급(21년 이상)으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경력보다는 업무 숙련도를 더 높게 평가한다. 등급 산정 기준은 여전히 형식적인 연차에 머물고 있어 고숙련 인력이라도 등급이 낮으면 현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 반대로 연차만 채운 인력이 고등급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숙련공 사기도 떨어지고, 등급제 자체에 대한 신뢰도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위작업 실명제'를 통해 누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투명하게 관리해야 등급제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 시공 과정에서 작업자의 이름을 공정 단위별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하고, 시공 전후 사진과 매뉴얼 준수 여부를 기록해 숙련공의 품질과 책임 이력을 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적정 임금제를 시행하면 고숙련 근로자는 실력에 맞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작업자별 책임 이력이 기록되면 공정별 하자 원인도 명확히 파악돼 품질 관리가 수월해진다.
적정임금제는 발주처가 정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도급 과정에서 근로자 임금이 삭감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2023년부터 300억원 이상 규모 공공공사에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현장 외면' 건설 기능등급제…연내 개편안 마련
기능등급제는 2021년 건설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됐다. 건설 기능인의 경력과 역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숙련공의 처우를 개선하고, 시공 품질과 현장 안전을 끌어올리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신규 인력 유입을 늘리고, 고령화로 인한 인력 공백 문제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추가 비용 부담을 우려한 건설사들 외면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기능등급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결국 실질적인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며 "등급을 취득해도 건설사들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우대하지 않으려 하기에 제도 활성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 5월부터 한국건설경제산업학회를 통해 '건설 현장 기능인 배치기준 마련 등 기능등급제 활용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음 달 말 연구가 마무리되면 연내 개선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기능등급제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로 내놓지 못했다.
'건설위기 보고서' 글 싣는 순서
<1-2> "3~4곳 추가 부도"…정리대상 된 중견 건설사
<2-1> '돈줄'인줄 알았는데 '덫줄'된 PF
<2-2> 다주택 규제 완화, 지방 부동산 회복 열쇠
<3-1> "하루하루 피 말라" 흔들리는 하청·후방업계
<3-2> 대형사도 못 피한 임금체불
<3-3> LH·지자체도 임금체불
<3-4> 대통령도 나섰다…수직 구조 개혁 시급
<3-5> 불법 재하도급 없이 버틴 이 회사
<3-6> 무너진 현장에서 손잡았다
<4-1> 외국인 건설인력, 내국인 일자리 잠식
<4-2> '외국인 규제' 아닌 '내국인 보호'로
<4-3> 채산성 악화 근본 원인 '잦은 재시공'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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