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 존재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능력이 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 인간의 고유한 특징으로 여겨졌던 사고력,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조차 AI 기술의 진보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AI는 이미 논리적 추론은 물론, 창작 등 이른바 감성적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간과의 대화에서 공감하는 반응까지 보인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해 왔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라틴어로 '지혜로운 인간'을 뜻하며, 인간은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언어를 구사하고, 문명을 일구어 온 존재로 여겨졌다. 이에 더해, '호모 파베르(Homo Faber)'는 인간을 '도구를 제작하고 활용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이러한 정의는 근대 이후 인간 중심주의의 근간이 되었고,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를 거치며 더욱 공고히 자리 잡았다.
오늘날 이러한 정의는 더 이상 절대적일 수 없다. 이제 AI는 인간의 사고력과 판단력, 감성적 문맥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도구를 만들어 활용하는 인간의 개념 역시 이미 오래전에 자동화와 로봇 기술에 의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하기 어렵게 되었다. 기계가 인간을 모방하고, 때로는 인간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 고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우리는 20세기 중반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통찰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문화학자인 하위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의 인간)에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본질로 '놀이'를 제시했다. 하위징아는 놀이를 단순한 오락이나 여가 활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창조성과 문화 발전을 촉진한 본질적인 활동으로 바라보았다. 놀이의 본질은 무엇보다 자발성과 자유로움이며, 이는 규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미래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바로 '유희 역량(Playfulness)'이다. 유희 역량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놀이에 적극 참여하고, 그 자체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협력과 경쟁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놀이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능력이기도 하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기계는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재미나 몰입,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인간은 놀이를 통해 기존의 규칙을 바꾸거나 새로운 문법을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놀이란 인간이 기계와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인간 고유의 본질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이 인간의 자발적 유희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희 역량을 미래의 필수적인 역량으로 바라보고 이를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 놀이하는 인간으로 돌아갈 때, AI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중심이 될 수 있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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