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 영향, 매년 농산물 가격 폭등 반복
산지 생산비 상승에도 제값 못 받아 불만
유통과정 고비용…소매가 인상 원인 지적
농축산물 유통구조 촘촘한 점검부터
수년 전 귀농한 지인은 최근 2~3주 새 밤잠을 설쳤다. 장마가 물러가고 이달 초 때 이른 폭염이 오나 싶더니, 충청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서다. 하우스에서 엽채류를 재배하는 그는 날씨에 민감하다. 기온이 너무 높으면 작물의 이파리가 시들해지고, 병충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호우에는 채소가 물에 잠겨 농사를 망친다.
지인은 서울의 대형 농수산물 경매장에 농작물을 유통한다. 요즘같이 날씨가 변덕을 부릴 때는 잎채소의 생육이 더디고, 평소 90% 수준이던 수율(양품의 비율)도 50% 이하로 떨어진다. 수확물을 경매장에 보내려면 정해진 용량을 맞춰야 하는데, 채소 잎의 무게와 부피가 줄어 더 많이 담아야 한다. 인건비에 비해 출하량은 떨어지고, 병충해 예방 비용은 늘어 생산비가 상승한다. 경매가가 이들 비용에 훨씬 못 미치는 날이 많지만, 거래처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산지 도매가격과 달리 소비자가 마주하는 과일과 채소 등의 소매가는 천정부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농수산물 유통정보 '카미스(KAMIS)'에 따르면 여름을 대표하는 과채류(과일과 채소)인 수박은 상품(上品) 기준 1통 가격이 지난달 초 2만1432원이었으나 지난 21일에는 이보다 46.4% 오른 3만1374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시금치 100g(상품) 소매가도 지난달 2일 670원에서 지난 24일에는 2303원으로 3배 이상 상승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본 배추와 딸기 등도 추석 이후 가격이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사례는 여름철 일상이 된 '히트플레이션'의 단면이다. 히트플레이션은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과 폭염 등의 영향으로 작물 수확량이 줄어 식량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폭염과 폭우 여파로 매년 제철 농작물의 가격이 뛰는 현상은 반복되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보니 "기후변화는 '극복'이 아닌 '적응'이 해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공개한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국내 식료품 가격 수준은 156으로 세계 주요국 평균보다 비쌌다. 영국 경제 분석기관 EIU 통계(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 과일·채소·육류 가격은 OECD의 1.5배 이상이었다.
농사일로 업을 전환한 지인은 "몇 년간 경험한 결과 불투명한 중간 유통 과정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생산자→도매시장→중도매인→소매상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붙는 마진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한은 보고서에서도 농업 생산성과 과일·채소의 수입 개방도가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유통시장도 고비용 구조로 굳어지면서 물가를 끌어올린다고 짚었다. 농산물 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
결국 산지에서는 제값을 받지 못해 불만이 크고, 자영업자나 소비자는 가격이 너무 비싸 구매를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산자들은 시급한 대책으로 "수급이 불안한 시기만이라도 유통 마진을 확 낮추고, 일부 사업자가 물량을 매점매석하는 부조리를 근절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뉴노멀이 된 이상기후에 적응하고, 식탁 물가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농수산물에 대한 유통구조부터 촘촘하게 점검해야 한다.
김흥순 유통경제부 차장 spor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1만원에 가족이 다 먹는다…냉면 매니아들 '이것'으로 갈아탔다[주머니톡]](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4053009542689803_1717030467.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