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는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사연은 정치인의 자산이다. 대중은 평면적인 삶보다는 극적인 삶에 끌린다.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라면 금상첨화다. 그런 사연은 인위적으로 꾸며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실패와 좌절, 땀과 눈물이 켜켜이 쌓여야 정치인의 훈장인 '삶의 나이테'가 형성된다.
정치인 김민석 이름에 부활이라는 수식어가 처음으로 뒤따른 시기는 2008년 7월6일이다. 5명을 뽑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그는 2위를 차지하며 당선됐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대선 후보 단일화 파동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던 그는 그렇게 부활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녹록하지 않았다. 정치적 색안경을 벗어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정치인에게 배신자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그런 주홍 글씨 때문에 정계를 떠난 이는 한두 명이 아니다.
정치인 김민석도 기약 없이 힘겨운 세월을 이어갔다. 2002년 그 일의 진실에 관해 아무리 진솔하게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김민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천 탈락의 아픔에 더해 시련의 기억만 쌓여 갔다. 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정당의 비례 대표 후보로 나섰지만, 정당 득표율은 0.88%에 머물렀다. 한때 잘나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주변인의 길. 김민석의 정치 인생도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민주당에 돌아와 실력으로 자기 진가를 드러냈다. 굳게 닫혔던 대중의 마음도 서서히 열렸다. 변화의 과정은 결실을 잉태했다. 그는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정확히 20년 만인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지금은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정치사에 각인된 수많은 인물이 있지만, 정치적인 나락까지 경험한 뒤 부활한 이는, 그것도 20년의 세월을 거쳐서 살아 돌아온 이는 사실상 김 총리가 유일하다. 그의 경험을 어떤 이의 극적인 사연 정도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드리운 절망의 그늘을 걷어낼 책무가 있다.
경쟁으로 점철된 세상은 고속 성장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을지 모르나 수많은 낙오자를 생성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세상 아닌가. 자살률 세계 1위의 불명예는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패자 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국무총리라는 자리는 그런 세상으로 이끌 힘과 권한을 지녔다. 특히 정치인 김민석은 그 역할에 적임이다. 실패의 참담함과 서글픔을 그보다 더 잘 아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그의 도전은 개인의 목표가 아니다. 좌절을 경험한 수많은 이에게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는 일이다. 도전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오해와 불신의 그늘이 다시 그의 앞길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런 때일수록 정치인 김민석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겸허함과 성찰이 총리의 자리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자기의 역사적 책무가 무엇인지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20년 세월을 기다리며 국민 마음을 얻고자 했던 일을 되짚어 본다면 답이 나온다. 정치인 김민석이 그런 과정을 거쳐 성공한 총리로 남는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살 만한 공간으로 변모하지 않겠는가.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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