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손강림' 지시한 왕실 조상신
아마테라스 신사 '이세신궁'은 총리 신년 참배 코스
이번주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일본인이 있다면 태양신 아마테라스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나 게임 캐릭터로 종종 등장해 이름은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일본 신화가 유명하지 않다 보니 이 신이 어떤 신인지, 일본에서는 어떻게 여겨지는지는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일본 왕권 신화의 핵심, 태양신이자 여신인 아마테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보통 왕의 지위를 부여하는 신이라면 태초의 신이어야 하는데, 아마테라스는 조금 다릅니다. 신화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책은 '고서기'와 '일본서기'인데요. 여기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릴 때, 높은 고원에서 5명의 신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혼자 있는 신이라 몸을 숨겼다고 해요. 그리고 일을 대신해 줄 또 다른 신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태어나는데요, 모두 남매로 태어납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쌍둥이 남매 이자나미와 이자나기, 이들이 아마테라스의 부모입니다.
일본이 생기기 전, 세상은 혼돈의 바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들은 이자나미와 이자나기에게 땅을 좀 단단하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합니다. 두 사람은 명을 받들어 창을 가지고 바닷물을 휘젓기 시작했는데, 이 창끝에서 떨어진 소금물이 굳어지면서 섬이 되었습니다. 남매는 이 섬에 내려와 아이를 낳았는데, 이것이 일본의 여러 섬과 신이 됩니다. 출산뿐만 아니라 눈물이나 소변에서도 신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다 합쳐서 섬 14개와 신 35명을 낳았다고 해요.
그러다 문제가 생깁니다. 불의 신을 낳다가 이자나미가 몸이 타버려서 죽게 됩니다. 이자나기는 떠난 아내가 보고 싶어 황천으로 찾아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요. 이때 이자나미는 그렇다면 절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이자나기는 이 금기를 깨게 되는데, 아내의 몸에 구더기가 들끓는 끔찍한 모습이었죠. 이자나기는 무서워 도망치게 됩니다.
황천에 갔다 온 이자나기는 바다에 더러워진 몸을 씻는데, 이때 벗은 옷에서도 신이 생겨나고 씻을 때마다 신이 생겨났다고 해요. 그리고 왼쪽 눈을 씻는 순간 우리가 아는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씻을 때 달의 신 쓰쿠요미 노미코토가, 코를 씻었을 때 폭풍의 신 타케하야 스사노오 미코토(스사노오)가 태어납니다. 이것이 아마테라스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름 어디서 들어봤더라 하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일본 애니메이션 '나루토'에 등장하는 술법이라 그렇습니다.
여하튼 이자나기는 세 자식에게 통치할 곳을 나눠줍니다. 아마테라스에게는 천상계 통치를 맡기는데요. 그런데 셋째 스사노오가 통치는커녕 울기만 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머니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해요. 그러자 이자나기는 "그럼 너는 여기서 살 필요가 없다"며 스사노오를 추방해버리는데요. 스사노오가 추방돼 하늘로 올라가자 대지가 심상치 않게 흔들립니다. 하늘에 있던 아마테라스는 내 나라를 뺏고 싶어서 온 것 아니냐고 묻고, 스사노오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죠. 이 결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를 두고 둘이 내기하게 되는데,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를 이깁니다. 그러자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가 관리하던 논을 엎어버리고, 물길도 메워버리고 신전에 똥을 뿌리는 등 행패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아마테라스는 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예 굴로 숨어버리는데요. 이 때문에 온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입니다. 아마테라스를 다시 끌어내기 위해 신들은 고민하는데요. 아마테라스가 나와서 볼 수 있게 나무에 거울과 구슬을 매달아 두고, 다 같이 모여서 노래하며 춤추며 깔깔 웃습니다. 아마테라스가 "왜 내가 없는데 다들 춤을 추고 웃고 있느냐"라고 묻자 춤을 추던 신이 거울을 보여주며 "여기 봐라. 당신보다 더 귀한 신이 와서 즐겁게 놀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테라스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 줄도 모른 채 더 다가가는데, 그때 다른 신이 아마테라스의 손을 낚아채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됩니다. 그러자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고 해요. 이 때문에 개기일식을 다룬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죠.
한차례 큰일을 마무리한 신들은 원인을 제공한 스사노오를 하늘에서 땅으로 쫓아내 버립니다. 스사노오는 인간계로 내려왔는데, 울며 불안해하는 노인과 딸을 만나게 됩니다. 오로치라는 커다란 뱀이 노인의 딸을 한명씩 잡아먹었고, 마지막 남은 딸도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스사노오는 독한 술을 빚고 울타리를 만든 다음에 뱀이 술에 취했을 때 칼로 베어버립니다. 베는 과정에서 뱀의 몸에서 '쿠사나기 츠루기'라는 영험한 칼이 나오게 되는데, 스사노오는 이 칼을 아마테라스에게 갖다 바칩니다.
칼을 받은 아마테라스는 천상계 통치자였기 때문에, 인간 세계를 어떻게 다스릴까 고민하던 중 자신의 손자인 니니기 미코토를 내려보내게 됩니다. 사실상 일본에 다스리러 내려오게 되는데요. 아마테라스는 내려보낼 때 자신을 굴에서 꺼내줬던 거울과 구슬, 그리고 스사노오가 가져온 칼 세 가지를 들려 보냅니다. 이 3가지 물건을 일본에서 '삼종신기(三種神器)'라고 합니다. 니니기가 사실상 하늘에서 인간계로 강림한 천손이다보니 이 삼종신기는 일본 왕실이 가지고 있는데요. 왕위 계승식을 할 때 이것을 이어받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벼 이삭을 같이 보내 쌀이 잘 자라는 국가가 되도록 하죠.
정리하자면 아마테라스는 하늘에서 일본의 땅으로 신을 내려보낸, 이른바 '천손강림'을 지시한 신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800만명의 신 중 가장 높은 신'으로 신격화되는데요.
보통 신화라고 하면 한 나라의 문화나 종교와 연결을 많이 짓게 되는데, 아마테라스 이야기가 기록된 일본 신화는 일본 왕실의 조상 전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신화는 '국가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학자들이 분류하기도 해요. 야마토 정권과 맞물려 황실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들이 재편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생략과 축약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야기가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인데요. 아마테라스는 왕가 조상신이라는데 천지가 개벽할 때 탄생한 신도 아닌데다, 오히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이야기가 더 신화같이 다가오기도 하죠.
아마테라스는 일본의 여러 신사에서 모시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일본 미에현 이세시에 위치한 '이세신궁'입니다. 일본에서는 총리가 새해 공식 업무를 이세신궁 참배로 시작하고, 특히 일본 우익의 중심이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매년 이곳을 찾았는데요. 이 때문에 이세신궁을 보수의 성지로 부르기도 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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