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VAM 4년만 300만t→380만t
에틸렌글리콜 등 수익성 급락에 감산 확산
석탄화학 앞세운 中 저가 물량 전방위 공세
국내 유일의 초산비닐(VAM) 생산업체인 롯데이네오스화학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증설 계획을 전면 보류하면서 석유화학업계 공포가 업스트림인 NCC에서 다운스트림인 응용제품까지 확산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저가 물량 확산이 증설을 연기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정밀화학소재 영역까지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CIS 등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초산비닐(VAM) 생산능력은 2020년 약 300만t 수준에서 2024년 들어 380만t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추산된다. 상하이화공, 산시진메이화위, 쑤이저우 JTC 등 대형 업체들이 최근 2~3년간 대형 설비를 가동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신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광시화이에너지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연간 30만t 규모의 신규 VAM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적인 증설은 공급과잉 우려를 넘어 아예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늘어난 중국산 VAM 물량은 동북아 시장에 가격 하방 압력을 주고 있다. 2023년 평균 t당 1000달러 수준이었던 이 지역 VAM 시세는 지난해 830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다. 중국산 VAM은 이보다 더 낮은 700달러 선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중국산 제품의 가장 큰 강점은 원가 경쟁력이다. 현지 업체들은 석탄을 분해해 원료를 자체 확보하는 '석탄 화학(Coal-to-Chemical)' 기반을 활용하는 반면, 한국은 메탄올 등 주요 원료를 대부분 중동이나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하는 구조다.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수입 의존형 구조 속에서 저가 중국산 물량과의 경쟁은 아예 불가능하다. 기술력만으로는 가격 격차를 메우기 어려운 만큼 국내 기업들은 구조적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VAM을 사용하는 건설·태양광·전선 등 주요 산업의 투자 둔화까지 겹치면서 국내 업체들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역마진' 구조에 직면하고 있다.
VAM 증설 연기는 단순히 해당 품목의 시황 부진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다른 중간공정 제품도 사정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폴리에스터 원료로 쓰이는 에틸렌글리콜(EG)은 2022년까지 동북아 시세가 t당 700달러 내외를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400달러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설비 확충과 수요 정체가 맞물린 결과다. 롯데케미칼은 여수2공장의 EG 및 메틸메타크릴레이트(MMA) 생산라인 가동 중단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산·울산지역의 일부 중견 석유화학사들도 범용제품과 특수소재를 가리지 않고 감산 또는 증설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 정밀제품이라 해도 글로벌 수요가 받쳐주지 않고 중국산과의 가격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는 얘기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VAM의 원료인 메탄올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원가 구조에서부터 이미 불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라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부딪치기보다는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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