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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바둑도 계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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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바둑도 계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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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이 경쾌한 바둑이 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가벼운 행마. 부담을 덜어내니 군더더기가 사라진다. 거침없이 뻗어가니 상대는 당황한다. 어설픈 덫을 준비한 상대는 망연자실. 초라한 자기 모습만 확인할 뿐이다. 싱그러움이 살아 숨 쉬는, 봄기운 같은 바둑.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미소를 띠게 하는 그런 바둑을 계속 두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아닐까.


강렬한 태양의 뜨거움이 느껴지는 바둑도 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거침없는 기세는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다. 천하를 쥐고 있는 듯한 착각은 황홀경의 세계로 인도한다. 하지만 과함은 탈로 이어진다. 내 안의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거침없는 기세의 칼날은 자기로 향한다.

평화로움이 물씬 풍기는 가을 같은 바둑도 있다. 편안한 흔들의자에 앉아 진한 커피를 음미하며 하늘의 뭉게구름을 감상하는 기분. 욕심을 내려놓으니 지나온 길도, 가야 할 길도 자연스레 보인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들. 그러한 삶의 이어짐을 위한 실천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기본을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둑도 있다.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강풍의 연속. 위태로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처지. 혹독한 환경은 서글픔을 동반한다. 싱그러움 가득했던 공간이 언제 그렇게 변했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욕심이 과한, 기본을 소홀히 하는 바둑이 반복되면 계절은 그렇게 겨울 또 겨울이다.


정치의 문법도 바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나 봄날의 꽃길이 이어질 것 같지만, 욕심이 과하면 시련의 계절로 인도한다.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범한 정부는 계절의 변화에 무심할 때가 있다. 부족함 없는 찬사가 매일 이어지니 현실 인식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을 해도 민심이 호응할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긴장이 풀리면 빈틈이 생겨난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과 대통령실, 여당의 이후 대처, 그것을 지켜본 여론의 기류는 어느 계절의 예고편일까. 욕심이 과한 이는 누구이며, 기본을 소홀히 한 이는 누구일까. 성찰을 토대로 겸허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봄기운 가득했던 공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 있다. 계절의 변화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까지 다다른다. 뒤늦은 후회와 함께….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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