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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계엄 예측했던 김대중의 '망명일기'..."주여 제게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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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계엄 당시 김대중 일기 책으로
'김대중 망명일기'
유품 정리하던 중 우연히 발견
일본과 미국 오간 행적과 생각, 기도 담아

나는 이 일기를 단장(斷腸·창자가 끊어지는)의 심정으로 쓴다. 그것은 오늘로 우리 조국의 민주주의가 형해(形骸)마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의 일부를 정지시켰다. (...) 참으로 청천벽력의 폭거요. 용서할 수 없는 반민주적 처사이다. 지금 본국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이 얼마나 놀라고 분노하고 상심하고 있을까." (1972년10월17일 '김대중 망명일기' 中)
'김대중 망명일기'의 원문이 적힌 수첩. 한길사

'김대중 망명일기'의 원문이 적힌 수첩.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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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일기가 쓰일 당시 야당 의원 신분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병 치료차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었다. 1972년10월17일 갑작스럽게 이른바 '10월 유신'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그는 망명을 각오한다. 직전 해 치러진 대선에서 근소한 차로 박정희에게 패한 그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고, 서울에는 아내와 세 자녀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17일 일기에 그는 "서울의 집과 기적적으로 통화가 됐다. 나는 아내에게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암시해줬다. 아내는 침착하다. 고마운 아내다. 나는 그에게 4000만원의 부채를 지어주고 왔으니 그가 겪을 고통을 무어라 위로할까"라고 썼다.


유신계엄 선포 전후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가 '김대중 망명일기'(한길사)로 출간됐다. 수첩 6권에 한자와 일본어, 영어를 섞어 쓴 손글씨를 책에 옮겨 담았다. 1972년8월3일부터 1973년5월11일까지 총 223편 분량이다. 수첩이 발견된 건 지난해 여름. 김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김홍걸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동교동 자택에서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책 출간 간담회에서 김 이사장은 "있는 줄도 몰랐기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정말 운 좋게 발견했다"고 밝혔다.

망명 중이었던 1973년 2월 재일한국청년동맹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당시 김대중 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한길사

망명 중이었던 1973년 2월 재일한국청년동맹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당시 김대중 의원이 연설하고 있다.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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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당시 김홍걸 이사장은 9살 초등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가져오실 선물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신선포가 되면서 어린 나이에도 분위기가 바뀌는 걸 크게 느꼈다. 집을 찾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유신계엄에 정국은 혼란스러웠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런 상황을 예상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71년 (대선후보) 연설에서 아버지는 '박정희가 집권하면 다음번 선거는 없다. 총통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며 "일기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가 아니라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터졌구나'라고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일기에는 당시 남북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의 태도가 의외로 온건하다고 하며 지난 12일 이후락(당시 중앙정보부장)·박성철 회담에서 서로 양해가 됐다고 한다"(1972년10월18일). "남북적십자 평양회담이 열리고 북한에서도 남한과 보조를 맞춰 헌법 개정을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북 간 사태의 배후에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1972년10월24일)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은 "과거 여러 기밀문서를 보면 박정희는 유신 이전에 두 차례 북한에 통보한다"며 "유신 선포 이전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반공을 부추긴 건 다 가짜였던 것"이라고 전했다.

유신계엄 예측했던 김대중의 '망명일기'..."주여 제게 용기를 주소서" 원본보기 아이콘

일기에는 망명생활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여러 정치인과 언론인을 만나 나눈 내용이 자세히 기록됐다. 누구를 만났고, 어떤 내용으로 대화(인터뷰)를 나눴고,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지 상세히 적혔다. 나라를 위한 기도문도 실렸다. 책을 펴낸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엄혹한 시절에 온 정신과 온 마음으로 기록한 역사적 증거라고 생각한다"며 "굉장히 드라이하게 서술된 와중에도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문은 가슴을 울린다. 타오르는 격정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주여, 우리 조국과 국민을 보살피소서. 주여, 저의 가족과 벗들을 지켜주시옵소서. 그리고 주여, 저에게 조국을 위해 일할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1972년10월22일)

한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매일 해야 할 일과 문제점을 기록한 국정노트 30권도 이후 정리 작업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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