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 TC 본더 대량 발주
공격적 투자로 HBM 주도권 위협
마이크론, HBM 점유 급성장
미국 마이크론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후공정 핵심 장비인 TC 본더를 대규모 확보에 나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증설 속도가 다소 정체된 틈을 타 마이크론이 공격적 투자로 공급망 판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마이크론은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는데, 국내 기업 중심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올해 한미반도체에서 TC 본더 장비 발주를 크게 늘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발주 규모가 전년 대비 두 배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2분기 한미반도체 실적을 보면 마이크론의 장비 수요 확대가 본격화됐다는 점이 보다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TC 본더 시장 1위인 한미반도체는 현재 마이크론의 장비 수요가 SK하이닉스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올해 HBM 공급을 추가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내부 사정으로 계획을 일부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반도체 수출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공시에 따르면 한미반도체의 2025년 1분기 매출 중 해외 고객사 비중은 90%에 달했다. 이는 2024년 연간 수출 비중(약 41%)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로, 북미 메모리 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고객사의 HBM 관련 수주가 급증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중에서도 마이크론의 주문 확대가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TC 본더는 칩과 기판을 정밀하게 접합하는 반도체 패키징 핵심 장비다. 특히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이다. HBM은 AI 반도체의 연산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으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 초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과 김민현 한미반도체 사장은 마이크론의 싱가포르 HBM 신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업계에선 마이크론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와 함께 한미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망 내 위상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이크론은 HBM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엔비디아의 5세대 HBM3E 12단 제품에 대한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AI 가속기 '블랙웰 울트라(GB300)'에 탑재될 제품 양산에도 착수한 상태다. 마이크론은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HBM 매출만 전 분기 대비 50% 성장했다고 발표하면서 연말까지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마이크론은 엔비디아, AMD 등 주요 고객사 4곳에 HBM을 대량 공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HBM 공급업체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46~49%, 삼성이 42~45%, 마이크론이 4~6%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마이크론의 성장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2033년 마이크론의 HBM 시장 점유율을 23%로 예측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마이크론의 급성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기술력과 사업 추진력을 겸비한 산제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 체제 아래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미국 정계와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관세나 수출규제와 같은 정책 리스크에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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