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워런 버핏도 美행동주의 활동
70~80년대 무자비한'기업 사냥꾼' 변질
2010년대 펀드끼리 '이리떼' 연합 전략
韓 상법 개정으로 행동주의 활성화 예상
단기 수익 노리다 기업 미래 망칠 수도
행동주의, 버핏 '헤드라인 테스트' 명심해야
'오마하의 현인' 워런버핏(1930~)은 막 투자를 시작한 1950년대에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투자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가치투자의 아버지'이자 행동주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수제자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인생 경로였다. 농업용 펌프를 만들던 상장사 뎀스터밀(Dempster Mill) 2대 주주가 되자 이사회 변경 등을 주장한 게 대표 사례다. 뎀스터밀은 버핏 주장대로 경영진 교체와 자산 매각을 통해 흑자 기업으로 변신했다.
1970~1980년대에 미국의 행동주의는 공격적으로 바뀌어 '기업 사냥꾼'의 시대를 열었다. 적대적 공개매수·차입 매수(LBO) 전략을 활용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칼 아이칸 등이 곳곳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에는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2000년대에는 헤지펀드 행동주의가 등장했고, 2010년대에는 ESG 펀드가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행동주의 펀드 주체와 전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수많은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한 201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이리 떼(Wolf Pack)' 행동주의 개념이 주목받았다. 한 펀드가 목표 기업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펀드들이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수해 공격에 동참하는 모습이 '이리 떼가 사냥하는 것 같다'는 미국 법원의 판례(Hallwood Realty Partners v. Gotham Partners, 2002)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사전에 공모하지 않지만 '냄새를 맡은' 펀드가 느슨한 연대를 통해 목표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제도가 급변할 때 자본 시장에는 언제나 '개와 늑대의 시간(The Hour of the Dog and Wolf)'이 펼쳐진다. 새벽이나 황혼처럼 시야가 어렴풋할 때는 멀리서 다가오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이리)인지 구분이 안 된다.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 시장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단행된 주식 시장 개방이 그랬다. 당시 타이거펀드(SK텔레콤), 소버린펀드(SK)라는 외국계 늑대가 먼저 찾아왔다. 장기적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란 결과를 낳았지만 당장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리는 아찔한 일이 있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도입한 상법 개정으로 다시 한번 자본 시장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찾아왔다.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게 늑대가 아닌 개이더라도 '떼를 지어 오면' 당장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 중국의 공급 축소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중동 전쟁 등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 있는 기업에 '이리 떼' 행동주의 펀드는 두려움을 가중시킨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 추가적인 상법 개정에 신중한 협의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
행동주의 펀드들도 '더 힘센 상법'을 가졌다고 칼을 마구 휘두르면 안 된다. 단기 수익을 노리다 기업 혁신 역량을 훼손하고, 장기간 형성된 기업 문화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는 말이다. 워런 버핏은 '헤드라인 테스트'를 제안했다. 투자의사 결정을 할 때 '이 내용이 신문 1면에 크게 보도되어도 내 가족, 이웃, 친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라는 조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도덕적으로 부끄럽거나 설명하기 어렵다면, 그런 투자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