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구교빈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데이터 기반 AI 솔루션 개발로 감사 효율성 높여
회계사는 AI 활용해 고도화된 업무 집중
신기술 이해하려는 태도가 출발점
AI 바람이 거센 요즘, 회계법인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전표 입력, 재무 데이터 분석처럼 단순 반복 업무에 AI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일찌감치 회계사를 의사, 건축가 다음으로 AI 대체 가능성 높은 직업으로 꼽았다. 하지만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AI 솔루션을 기획·개발하고 있는 구교빈 회계사는 이 같은 전망에 반론을 제기한다.
구 회계사는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회계사는 AI에 대체될 직업이 아니다"며 "오히려 AI를 도구로 커뮤니케이션, 복잡한 사례 분석 등 더 고도화된 업무에 집중해 전문성을 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이선 독학해 '데이터 수사관'으로 진화
구 회계사는 2012년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해 약 10년간 전통적인 회계감사, 재무제표 검토 등을 수행하다가 데이터 기반 AI 솔루션 개발로 커리어를 확장했다. 2019년 말 딜로이트 안진 회계감사 부문 내 'AI Asset & Analytics 그룹'에 합류해 내부통제, 재무분석, 감사 자동화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실무형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구 회계사는 "오랜 시간 회계감사 부문에서 반복적인 업무를 하면서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해 회계사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회계 지식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결합한 도구를 만들어 회계사들의 업무 정확성,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IT 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그는 커리어 확장을 위해 파이선(Python), SQL 등 프로그래밍 기술을 독학했다. 처음에는 문법이 익숙하지 않아 단 한 줄의 코드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으나, 작은 단위부터 구조를 이해하고 실무에 적용하며 역량을 키웠다. 현재 AI Asset & Analytics 그룹에는 구 회계사와 같은 IT 비전공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그는 "단순히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막연하게 느껴졌겠지만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한 도구'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니 습득 속도가 빨랐다"고 전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 공시 자동 분석 툴'을 개발했다. 전자공시 파일 업로드만으로 XBRL 공시용 엑셀 템플릿을 자동 생성해 줘 기존 수작업 기반 데이터 입력과 수기 검증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업무 효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기업 내 자금사고, 횡령 징후를 탐지하는 '라이트하우스' 솔루션 개발에도 참여했다. 매입, 매출, 계좌 흐름 간 불일치나 반복적 전표 패턴만으로 위험 신호를 포착할 수 있고, 내부 감사·회계팀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전형 솔루션이라 다수 기업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구 회계사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회계사가 단순 정합성 검토를 넘어 사건의 구조를 해석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이터 수사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언급했다.
"데이터 분석, 선택 아닌 필수"
그는 데이터 분석 역량이 이제 회계사에게 '필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 재무정보가 점점 더 방대·복잡해지고 있어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빠르게 추출하려면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 회계사는 "AI 시대에는 기술 구현 능력보다 도메인 지식과 문제 설계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며 "AI가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졌지만,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회계사의 분석력은 그 판단을 더욱 정확하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구 회계사는 후배 회계사들에게 '기술을 이해하려는 태도'부터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는 "AI를 직접 개발할 필요는 없다"면서 "간단한 자동화 도구의 문법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해 엑셀 매크로, SQL, Python 같은 도구들을 실무에 접목해 보는 경험을 쌓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속한 분야의 구조와 논리를 이해해 도메인 전문가가 된 후 그 위에 기술을 얹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 회계 데이터를 넘어서 비정형 데이터를 연결해 종합적인 리스크 진단과 예측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 회계사는 "기존 감사가 과거를 검토하는 것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미래 대응'을 위한 예측 기반 감사 플랫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런 흐름을 선도하고 싶고, 특히 데이터 복지가 부족한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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